딸을 팔아 벼슬(재물) 얻은 악질 아버지들
딸을 파는 이야기는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고 실제 역사 속에서도 횡행했던 일이었다.
각종 세금을 못 낸다든지, 돈을 빌려 쓰고 갚을 방법이 없다든지, 정말이지 찢어지게 가난해 입에 풀칠하기 어렵다든지, 주로 가난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요즘에도 제 딸을 돈 몇 푼에 윤락가에 팔아 넘겼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 착잡한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러나 패륜적이고 악질적인 사례도 허다했다.
아버지가 죄를 지어 옥에 갇히자 딸을 고을 원에게 바쳐 풀려나는 일 정도는 약과였다.
딸을 관기로 팔아 기적에 올린 다음 벼슬아치에게 접근․동침하게 하여 벼슬이나 재물을 얻기도 하고, 심지어 계집종으로 팔아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런 행악을 저지른 자를 보기 좋게 놀려먹은 이야기가 있다.
"딱 한 가지가 빠졌구려......"
옛날 이아무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진 재산은 없고 부잣집의 수리를 논하며 곁일을 봐주곤 했다.
놀기 좋아하고 간혹 허풍을 떨기도 했지만 제법 의기가 있어 잘못되었다 싶은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한 번은 평안남도에 있는 안주에서 만석꾼의 일의 봐주고 제법 큰 돈을 얻었다.
좋은 기분에 며칠 소 잡고 술 빚어 원근의 이름 높은 기생들을 불러모아 놀았다.
그런데 함께 끼어 놀던 장사치가,
“좋은 술에 진수성찬이 가득한데, 딱 한 가지가 빠졌구려.”
슬쩍 딴죽을 걸었다.
“아니, 빠지다니? 뭐가 빠졌다는 말이오?”
이아무개는 기분이 상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안주 땅의 으뜸 기생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없으니 흥이 반쪽일 수밖에…….”
“으뜸 기생이라?”
그 장사치의 말에 따르면, 그 기생은 얼굴이 관서에서 가장 으뜸이고, 또한 기예도 으뜸이어서 따를 기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생을 절도사가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사신조차 그곳을 지나면서 만나보기 어려웠고, 웬만한 부자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는 거였다.
딸을 기생 만들어 절도사에게 접근시켜......
“그게 다 그 아비라는 자가 기예를 가르치고, 제 손으로 기적(妓籍)에 올려 절도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시켰기 때문이라오. 오래 전부터 딸을 팔아 재물을 모으기로 작정하고 일을 꾸몄던 게지요.”
“아무리 그래도 만금을 준다 하면 오지 않겠소? 그 아비가 재물을 탐하는 자라 하니, 못할 것도 없을 듯한데…….”
“그래가지고는 코빼기도 보기 힘들 게요. 조선 최고의 갑부라면 또 모를까. 여기까지 오기는커녕 얼굴만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원이 없겠소.”
이아무개는 잠깐 생각하더니 한창이던 술판을 모두 치우게 했다. 그리고는,
“안주에 가서 열흘 안에 그 으뜸 기생과 동침하고 돌아오겠소.”
장사치들과 내기를 하고, 실패하면 천냥을 주기로 했다.
이아무개는 곧 말에 짐을 싣게 하고, 어깨에는 비단 쾌자를 걸치고, 하인도 없이,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할 장사치 한 사람만을 데리고 채찍을 울리며 안주성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나는 송도에 사는 조선 최고의 거상(巨商)이요. 기생의 집에 당도하면 그에 맞게 예를 갖추도록 하시오.”
그는 그 기생의 집을 찾아가 주인을 불렀다.
주인은 기생의 아비였는데, 딸을 팔아 얻은 재물로 제법 그럴듯한 주막을 열었던 것이었다.
"우리 딸을 팔아서라도 돈을 왕창......"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값진 물건이니, 내 방에는 다른 손님이 절대 못 들어오게 하게. 나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언제 올지 확실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떠날 때 식비 일체를 청산하겠네. 그리고 나는 원래 식사를 잘 못하지만 조석은 반드시 정갈하게 하게. 값이 비싸도 상관없네. 주인이 달라는 대로 치를 테니까.”
기생 아비가 생각하기에, 이 손님은 장사치가 분명하고, 그가 싣고 온 물건이 무거운 것을 보면 아마 돈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선선히 받아들였다.
이아무개는 방에 들어가 보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데리고 온 장사치에게,
“장지나 좀 사오게. 잠시 묵고 간다 하더라도 어찌 이 더러운 방에 누울 수가 있겠는가.”
했다.
이렇게 해서 이아무개는 방 안 도배를 하고, 싣고 온 짐을 베개맡에 자리를 잡아 놓은 다음, 양털요를 깔고 빨간 비단 이불을 펴고, 행랑 속에서 큰 장부 한 권과 주판 하나, 작은 벼루 하나를 꺼내어, 문을 닫고 데리고 온 자와 함께 날마다 쉴 새 없이 회계를 하는데 바쁜 것처럼 했다.
기생 아범이 문틈으로 가만히 엿들으니, 모두 비단과 인삼을 셈하는데 그 액수가 나라 살림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엄청난 것이었다.
기생 아범은 자기 아내와 의논했다.
“저 손님은 거상이니까, 우리 딸을 보면 반드시 좋아할 것이고, 좋아하면 반드시 무슨 소득이 있을 테니 절도사에 비할 수가 있나.”
하고 몰래 딸을 관에서 불러내어 송도 거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기생은 이아무개의 방 밖에서 절을 하고,
“높으신 손님께서 이토록 누추한 곳에 오래도록 머무르신다 하기에 젊은 주인이 현신하옵니다.”
아뢰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아양을 떠는데......
그런데 이아무개는 방문을 조금만 열고 내다보면서,
“젊은 여주인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뭐 이럴 것까지 있나? 어찌 됐건 지금 몹시 바쁘니 나중에 다시 봄세.”
거절하고 다시 주판을 잡으며 마치 기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했다.
이를 보고 기생 아비는 무릎을 쳤다.
“이거야말로 거상이구나. 눈이 높을 뿐더러, 여색보다 재물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분명 거상의 행동거지로다.”
그 아비가 저녁에 조용한 틈을 타서 사과를 했다.
“제 딸년이 아직까지 부끄러워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손님께서 너무 쌀쌀하셔서요. 딸년이 못생겨서 그러시나요?”
“그건 아니오. 보다시피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워낙 중요한 데다가 복잡하고 액수가 커놔서 그랬던 게요. 오해 마시오.”
이아무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주인에게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그럴수록 기생 아비는 애가 타서 시키지도 않은 온갖 음식에 침구를 새로 내오기도 하고, 주안상을 내오는 등 서성거리고 들락거렸다.
그러기를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을 하다가 종국에는 마치 어쩔 수 없어서 주인의 말을 따르는 듯 꾸몄다.
“내 이리 급히 오기로 한 짐이 있어 맞추어 줄 돈을 계산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소. 헌데 주인의 정성이 너무 지극해 모른 척할 수가 없구려.”
하니, 기생은 술상을 차려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배꼽 맞추고 뼈가 녹는 밤을 지냈는데......
마침내 이아무개는 그날 밤 기생과 동침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시며 기생을 안고 마음껏 즐겼다.
마치 꿈 같은 시간이었고, 기생이나 그 아비는 드디어 한 재산 크게 챙길 수 있게 되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저렇게 우리 딸년과 배꼽을 맞추고 뼈가 녹는 밤을 지냈는데, 나중에 당연히 한몫 챙겨주겠지."
그러다 하루는 이아무개가 무슨 걱정이 있는 듯 주인을 불러 물었다.
“혹시 서도에 요즘 도둑이 출몰한다는 소문 없던가?”
“그런 소문 들은 적 없습니다.”
이아무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그래. 그럼 의주에서 예까지 며칠 만이면 올 수가 있겠는가?”
“예, 늦어도 사흘 정도면 와 닿을 겝니다.”
다시 이아무개는 뒷짐을 지고 초조한 듯 서성거렸다.
“그럼 기일이 벌써 지났군. 그새 발병이라도 났나?”
“손님, 무슨 일로 그리 걱정하십니까?”
이아무개는 말할 수 없다는 듯 사이를 두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연경에서 올 화물이 있는데 아무 날 강을 건너서 아무 날 나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여태 오지 않으니 걱정이야. 나는 그 짐을 받으려고 저 많은 금덩이를 가지고 예서 기다리고 있건만.”
그리고는 같이 왔던 장사치를 보고,
“자네는 혹시 모르니 지금 서문 밖으로 나가 기다려 보게.”
일렀다. 그 사람이 저녁에 돌아오더니 아직 오지 않았다고 고하자, 그는 이때부터 날마다 걱정이 점점 더 커지는 듯한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시 이틀이 지난 뒤, 주인을 불러 앉혔다.
“내가 다시 앞길로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가지고 온 저 짐이 중요하기 때문일세. 이제 주인은 나와 한 집안 식구나 다름없으니 마음 푹 놓고 부탁함세.”
딸 팔아 재물 모으려던 자의 최후
이아무개는 헛기침을 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도 짐이 오지 않으니, 조울증이 심해서 병이 날 것 같네. 이대로 여기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네. 그래서 이 짐을 주인에게 맡길 테니, 잘 간수해 주게. 난 좀 앞길로 나가서 약속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겠네.”
간곡히 부탁하고 곧 그 방을 자물쇠로 잠갔다.
그리고 기생의 손을 부여잡고는,
“내 일을 보는 대로 돌아와 너를 송도에 데려 가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기다리고 있거라.”
제법 위엄 있게 말하고는 날아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줄곧 샛길을 따라 내기를 했던 약속 장소로 돌아왔다.
기일은 열흘이었지만 엿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편, 기생의 집에서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너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의심스러워 자물쇠를 부수고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짐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금덩이라고 했던 행낭을 풀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달걀처럼 생긴 조약돌뿐이었다.
그 후 이아무개는 고향으로 돌아가 안주 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장사치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이 소문은 삽시간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노발대발한 절도사가 기생과 그 아비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겨우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모두 팔아 바친 후 풀려난 그들은 안주 땅을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딸을 팔아 재물을 긁어 모으려고 했던 자의 최후였다.
요즘에도 있다.
딸을 팔아 재물도 모으고 권력을 쥐려는 사람도 있다.
제가 나설 수 없으니까 딸을 대신 내세워 정치자금 대주고 한 자리 차지하는 거다.
비단 딸뿐이랴.
팔 수 있으면 딸이든, 마누라든, 아들이든 상관 없다. 부모도 판다. 제 영혼도 판다.
지금도 정권이 바뀐 후 '영혼 없는 나팔수'들로 정가는 북적이고 있다.
정권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하고, 국민을 짓밟기도 하며, 나라를 팔기도 한다.
제 자식, 제 부모, 제 영혼까지 파는 자들이 나라인들 대수랴.
어차피 영혼을 팔았기 때문에 옆에서 누가 뭐라든 그들은 머리를 조아린다.
나중에 망할지언정, 나중에 죽게 될지언정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몸도 마음도 모두 내어준다.
그래서 감사 결과도 정권의 입맛에 맞춰 제깍 발표하고, 대국에 이것저것 상납해서 보호를 약속 받으며,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일시에 회복함과 동시에 영구적으로 공고히 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최후는 우리 옛이야기들이 빤히 보여주고 있다.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거나 방방곡곡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세상을 뒤엎었다.
자연이 견디다 견디다 안 되면 태풍이나 지진, 해일 등으로 자정 활동을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때가 점점 다가오는 듯하다. 느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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