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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하

"누군가 내 속마음에 말을 걸어온다면..."

어린이 무의식에 말을 거는 옛이야기
『재치가 배꼽 잡는 이야기』, 조호상 글, 김성민 그림, 사계절, 1998.

사용자 삽입 이미지부르노 베텔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

“옛날 옛날에⋯.”

50여명이 넘는 아이들 두 눈이 일시에 나에게 쏠린다.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조용히 나만 보고 있다.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나 초롱초롱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듣고 있다.
멋진 그림책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아기자기한 동화구연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모두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 몇 해 전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대상의 독서수업을 할 때였다 그 때 책에서만 읽었던 ‘옛이야기의 매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옛이야기의 매력은...

“아주 게으른 아들이 하나 있었어. 이 아들은 밥 먹고 똥 싸고 잠 자고 밥 먹고 똥 싸고 잠자는 일 밖에 하는 일이 없었어.”

옛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잘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보이거나 반쪽이다. 돈도 없고 늘 가난하다. 게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그런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옛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개성적 인물과 전혀 딴판이다. 그러니 듣는 아이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비교해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다.

“하루는 엄마가 잔소리를 했지. 옆집 누구는 엄마 일도 돕고 땅도 갈고 새끼도 꼬고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이 대목은 아이들이 늘 듣는 말이니 공감 백프로. 옛날에도 엄마들이 잔소리할 때 남의 애들과 비교하면서 했나보다.

엄마의 잔소리에 게으른 아들은 깨를 얻어오라고 해서 마당에 깨를 한바가지 들이 부었다. 그랬더니 거기서 깨가 쑥쑥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었고 가을이 되어 게으른 아들은 깨를 많이 거둬들여 빌려온 집에도 갚고,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깨를 기름으로 짜서 강아지에게 먹이니 강아지는 기름져서 미끌미끌해졌다.

게으른 아들은 강아지를 산 속에 끌고 가 새끼로 묶어 나무에 매어두었더니 호랑이가 강아지를 잡아먹어 버렸다. 미끄러운 강아지는 호랑이 입으로 들어갔다 똥구멍으로 쏙 나왔다. 그렇게 해서 밤새 강아지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들이 줄줄이 꿰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늘 엄마에게 무시당하지만...

베텔하임은 『옛이야기의 매력』(시공주니어, 1998)에서 옛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무의식에 말을 걸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게으른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사하고 늘 엄마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언제라도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호랑이를 줄줄이 꿰어서 잡을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요즘 옛이야기 책들이 많이 나온다. 출판사마다 시리즈로 묶어서 내고 있다. 소리내어 읽어도 좋고, 눈으로 읽어도 좋고, 읽고 난 뒤 기억나는 대로 들려주어도 재미난 책이 옛이야기다.

『재치가 배꼽 잡는 이야기』에 일곱 편의 옛이야기가 실려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거나, 아이가 엄마에게 들려주면서 옛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우리 내면에 어떤 말 걸기를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한양하/

&lt;b&gt;재치가 배꼽 잡는&lt;/b&gt; 이야기(사계절 저학년 문고 8) 상세보기
조호상 지음 | 사계절 펴냄
<b>재치</b>있고 <b>배꼽</b>을 잡을 만큼 우스운 옛이야기 일곱편을수록한 저학년문고. 너무 가난해서 좁쌀 한톨을 들고 시집올 처녀를 찾으러 떠난 총각이 좁쌀을 쥐로, 고양이로, 황소로 바꿔서 결국 부잣집 처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