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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손 안 대고 코풀기-독립문(영은문)의 경우

‘없을수록 기와집을 짓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헐리기 전 외국인들이 찍은 영은문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절약은 큰 미덕의 하나였고, 그와 연관된 옛이야기도 아주 많다.


그러나 절약을 넘어 지나치게 인색하게 구는 것 또한 경계하였으니, 작은 것을 아끼려다 오히려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힌다’는 속담이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주머니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없을수록 기와집을 짓는다’고 했으니, 돈 없다고 지지리 궁상을 떠는 것보다 좀더 희망을 가지고 살아보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선뜻 돈을 쓰기도 어렵고 안 쓰자니 또 문제인 경우, 발상의 전환은 그 얼마나 유용한가?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 옛이야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기왓장 하나에 2-3천 냥?

어느 해 지금의 독립문 앞에 초석만 남아 있는 영은문 용마루 위의 기왓장 하나가 깨져 비가 샌 적이 있었다.
서리가 이를 보고 기와장이를 데려다가 보이고 어찌하면 좋을지 물었다.
“어찌하다니요? 깨진 기와를 걷어내고 한 장을 새로 이어야 합지요.”
그냥 두면 비가 스며들어 대들보가 썩고 급기야 건물이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영은문을 잃고 난 후 영은문을 고치느니, 잃기 전에 고치는 게 당연지사.

“헌데…….”
“헌데라니? 기다란 사다리를 가져다가 올라가 새 기왓장을 이면 될 것 아닌가?”
서리의 말에 기와장이가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려울 것 같은뎁쇼. 고치자니…… 사다리를 기대면 문루가 넘겨 박힐 것이 염려가 되고.”
“문루가 그리 허술하다는 말인가?”

기와장이는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며 살피고 또 살피며 최종 결론을 내었다.
“이건 비계를 메어 올라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아니, 기왓장 하나 부서진 것 때문에 비계까지 메어야 한다는 말인가?”
“다른 방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요.”
“그러자면 경비가 어느 정도 들어야 하겠는가?”
“적어도 이삼천 냥은 들어야겝지요.”

서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왓장 하나 고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경비였다.
게다가 벌써 몇 년째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들어 나라 살림도 어려운 지경이라 선뜻 결정하기 힘든 일이었다.
서리들이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지만 뾰족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고, 때마침 장마가 시작되어 영은문의 누수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배보다 배꼽

영은문은 당시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아들이던 문으로 나라의 첫인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었다.
급기야 서리들은 비계를 메어서라도 새 기와를 얹기로 하고 호조판서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허허, 이거 정말 배보다 배꼽이로구나.”
호조판서는 곧바로 결정하지 않고 다시 기와장이를 불러 상세히 물어보고 직접 영은문에 나가 상황을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자기 돈 2천냥을 내어주며 서리에게 이리저리 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아침,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희한한 풍경이 벌어졌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사려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호조의 서리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 끌어모은 자들이었다.
“이것 보시우, 그 나뭇짐 모두 나한테 파시우. 값은 후히 쳐 주리다.”
그들은 호조판서가 준 돈으로 나뭇짐을 사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날이 새면서부터 고양, 벽제 쪽에서 바리바리 장작이며 솔가지 따위의 나뭇짐이 줄지어 들어왔다.
모두 서대문으로 해서 서울 안으로 들어가 팔려는 것이었다.
“힘들게 문안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값은 그대로 쳐줄 터이니 오히려 이득이 아니오?”
나무꾼들은 손해볼 것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까탈스러운 손님과 깎아달라느니 안 된다느니 흥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더 좋았고, 종일 기다려봐야 다 못 팔 때도 있는데 그럴 염려 없어서 더욱 더 좋았다.

“허허, 그러시우.”
돈을 풀어 시세껏 금을 쳐 주니, 문안까지 갈 것도 없고 한꺼번에 제 값을 다 받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 모두 팔았다.
이렇게 사들인 나뭇바리는 모두 영은문으로 옮겨졌다.
“나으리, 이제 다 도착하였사옵니다.”
서리가 고하자, 호조판서는 영은문의 용마루 높이를 가늠해보더니 명을 내렸다.

"허허, 이렇게 쉽고 간단할 수가..."

“나뭇단을 쌓되 사람이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게 튼튼히 쌓도록 하라.”
명에 따라 하인들이 이 나뭇바리를 문 안팎에서 쌓아 올라가니 워낙 많아 수백 바리라, 삽시간에 그 높은 문의 용마루와 가지런해졌다.
그러자 위에 발판을 걸치고 기와장이가 올라가 기왓장을 바꿔 얹으니 일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다.
점심 때가 되기도 훨씬 전에 일이 끝났다.

“모두 수고하였다. 이제 저 나무를 다시 내어가게. 아마 장에서는 난리가 났을 걸세.”
호조판서의 말대로 그 시간 감영 앞이나 서대문 안 야주개 근처에서는 야단이 나 있었다.
나무를 사려고 해도 그날 따라 나뭇바리가 통 안들어와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은문 소동이라,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나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구, 오늘 우리 영감마님 동태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 줄 몰러유.”
영은문 기와를 고치고 필요 없게 된 나뭇바라를 도로 원가로 파니, 그 자리에서 말끔히 다 팔려버렸다.
결국 호조의 돈은 한 푼도 축난 것이 없었다.

흥청망청 벼슬아치와 똑똑한 벼슬아치

그 나이 많은 호조 서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다.
“내 나이 80이 다 되도록 수십 명의 판서를 모셔 봤는데, 이 때 단 한 번 판서다운 똑똑한 판서를 모셔 봤다우. 나머지는 전부 나랏돈을 다 제 돈인 것 마냥 흥청망청 쓰는 벼슬아치가 대부분이었지요.”

요즘은 어떤가.
그렇게 똑똑한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찾기 어렵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