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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와, 대물이다, 대물!" 낚싯대가 출렁이고...(?)

양반 업고 개울 건너기

부당이익 편취의 달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단원 김홍도의 그림 중에서

봉이 김선달 하면 대부분 대동강 물을 팔아 ‘부당이익’을 취한 인물로 기억한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룻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당장 김선달은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술을 한잔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한 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 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수군대는 건 당연했다.
이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마치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처럼.
이 소문을 들은 한양 상인이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대동강 물을 파는 것에 귀가 솔깃해졌다.
한양 상인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드겨 못팔겠다고 버티는 김선달로부터 결국 거액을 주고 주인 없는 강물을 샀다.

김선달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많다.
그 중 한 가지.

"한 닢 줄게" vs "두 닢 주시우"

하루는 김선달이 개울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한 동네에 사는 양반이 나타났다.
그 양반은 돌다리가 놓인 곳을 살피다가 슬금슬금 김선달 쪽으로 다가왔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뒤라 돌다리가 잠겨버릴 정도로 물이 불어나 있었다.
천석꾼이면서도 남에게 인색하기 그지없고 오히려 소작인들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짜내려고 온갖 꼬뚜리를 잡아 괴롭혔다.
김선달은 늘 그를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양반은 갓 쓰고 도포 입고 가죽신까지 신은 채 그 어느 때보다 더 거드름을 부리며 말을 걸었다.
“이보게. 고기가 잡히나? 얼마나 잡았는가?”
하지만 망태기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허허, 꼭 고기가 잡혀야 낚시인가요? 고기만 빼고 다른 건 많이 낚았소이다.”
양반은 입을 비쭉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래가지고 저녁 찬거리도 없이 어쩌려고 그러나?”
“찬거리가 없으면 나물이라도 뜯으면 될 것이고, 그도저도 시원치 않으면 마누라의 지청구도 거칠지만 찬이 되오이다.”

양반은 은근히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나를 업고 개울을 좀 건너 주게나. 내 그 삯을 줄 터이니.”
김선달은 순간 번뜩 한 가지 꾀가 떠올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러지요. 고기는 안 잡히고 다른 건 넘치도록 낚았으니, 잠시 돈벌이나 하지요, 뭐. 그래, 삯은 얼마나 주시렵니까?”
“한 닢 주지.”
“두 닢 주시우.”

“이 사람아, 바로 코 앞에 데려다 주는 삯으로 너무 과하지 않은가?”
“아이고, 도포며 가죽신을 저 벌건 흙탕물에 빠뜨리는 것보다야 낫지요. 게다가 저보다 갑절은 무게가 나갈 것 같은데.”
김선달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엉거주춤 도로 주저앉으려고 했다.
다급해진 양반은 소매자락을 붙잡았다.
“알았네, 알았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가세.”

"우와, 낚싯줄에 대물이 걸렸다!"

김선달은 양반을 업고 개울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어어, 조심하게. 건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삯은 없어.”
그 말을 듣자마자 김선달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흘깃 자기 낚싯대를 돌아다 보았다.
“여기서 그만 내리셔야 하겠소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나더러 이 흙탕물에 발을 담구라는 말인가?”

“예, 지금 내 낚싯대에 큰 잉어가 잡힌 것 같은데, 마침 낚싯줄 끝이 내 발 밑에 눌려 있소이다. 이 놈을 장에 가서 팔면 못 받아도 한두 냥은 받을 테니, 두 닢보다는 두 냥을 얻는 게 이득이겠지요.”
김선달은 정말 잉어가 걸려 퍼덕이는 것처럼 발을 움직여 보였다.
“엉, 이놈이 마구 날뛰는구려. 어서 내리시오!”
양반은 팔에 힘을 주어 김선달의 목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알았네, 삯을 세 닢 줄 터이니 어서 건너가세.”
“세 닢? 에이, 안 되겠소이다. 잉어를 팔아 두 냥을 벌어야지. 못해도 한 냥은 받을 수 있고, 내가 푹 고아 먹으면 보신이라도 될 것이니 그게 훨씬 낫지요.”
발 밑에 걸린 잉어는 더욱 퍼덕이며 도망가려 했다.
“가만, 가만. 네 닢, 아니아니, 닷 닢을 줄게.”
“아이고, 안 되겠다니까요. 이놈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에 들어가면 또 몇 날 며칠을 시달려야 될 판이니…….”
김선달은 양반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던 손을 슬쩍 풀어버렸다.

“이거, 이거 왜 이러나. 알았네, 더 줌세, 곱절을 더 준다니까.”
“뭐라구요?”
“한 냥을 준다니까. 제발 놓지 말게나.”
“정말이오이까? 허어, 이거 난처하군.”
양반은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더 다급하게 소리쳤다.

돈 잃고 흙탕물에 빠지고...

“내 지금 당장 줌세, 한 냥.”
김선달은 은근슬쩍 다시 깍지를 껴 양반의 엉덩이를 받쳐주었다.
“참, 양반 체면에 도포며 가죽신에 흙탕물을 묻히는 것도 그렇고…….”
“자, 자, 여깃네. 한 냥.”
그제서야 김선달은 못 이기는 체 하고 돈을 받아들며, 발로 개울물을 쳤다.
“에이, 그놈의 잉어, 정말 아깝네. 지금 보니 두 냥 아니라 그보다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깝네, 정말이지 아까워.”

양반은 혼자 놀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겨우 건너편에 내렸다.
“고맙네, 정말 고마우이.”
김선달은 비척거리며 걸어가는 양반을 보고 입으로 손을 막은 채 웃고 또 웃었다.
그런데 그 양반은 너무 긴장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허청허청 걷다가 그만 물웅덩이에 발이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