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날려줄 모모의 뜨거운 인간애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다
아직도 덥다.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남보다 먼저 더위를 느끼고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린다.
더군다나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또 길다.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만 나오고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다.
지난 초여름,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원고 한 줄 써내려가는데 땀이 서 말이나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인데.
자기 앞의 생을 대신 살아줄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하기야 내가 선택한 가난은 모모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에 피에 불과하지 않은가.
창녀의 아이, 모모
모모는 10살 안팎의 어린애로 로자 아줌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창녀의 아이지만 부모가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아버지란 사람이 찾아온 적도 있고, 누군가 보내주는 돈이 있었기에 로자 아줌마 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슬펐던 아이다.
로자 아줌마는 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어있는 창녀의 아이들을 그들 대신 보살펴주는 일을 한다.
가난한 동네답게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제투성이의 아웃사이더들이다.
마약이나 알콜중독자, 호모,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불법체류자 등.
그러나 그들은 비록 사창가 주변에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모두들 자신의 생을 담담히 살아가고, 동시에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사창가에서 인생을 배우다
어린애다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모모는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
치매로 정신이 나간 95kg의 로자 아줌마가 창녀 시절을 회상하며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관능적인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늙고 못 생긴 할머니가 성기까지 보이는 차림새로 나타난 것을 보고, 모모는 참을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로자 아줌마까지 세상을 떠나면 더 이상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모가 떠날까봐 나이를 속인 로자 아줌마의 슬픈 고백을 듣고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모모의 사랑은 숭고하다.
결국 모모는 끝까지 그녀를 지킨다.
죽은 지 3주가 지나 시체 썩은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올 때까지.
모모는 그녀에게 화장품을 발라주고 말을 걸며, 함께 잠을 잤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가 보여준 ‘뜨거운 인간애’로 책을 읽는 독자들을 숙연케 만드는 소설이다.
'자기 앞의 생'을 쏴 '페루에 가서 죽다'
지은이 에밀 아자르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다른 이름이다.
“명성, 내 작품의 평가기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내 얼굴, 그리고 책의 본질 사이에는 모순이 많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편견에 갇힌 사람들의 시선을 과감히 거부한 것이다.
그런 그가 66세 되던 1980년 권총으로 ‘자기 앞의 생’을 쏘아 스스로 마감했다.
그리고 그의 짤막한 유서에는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고 썼다.
한여름 무더위에 무장해제 당한 채 헉헉거리기보다 조용히 ‘내 앞에 놓인 나 자신의 생’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자기 앞의 생'을 권총으로 쏘아 마감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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