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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명품과 짝퉁 구별법-현혹되지 말라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족자

요즘 중국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별 해괴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한다.
청심환을 비롯한 온갖 엉터리 약재를 싹쓸이 해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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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고 보면 청심환은 중국산이 가격이 저렴하여 많이 사오고 있지만, 실제 약효를 보증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우황청심환은 우리나라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인삼과 함께 조선의 명약으로 알려져왔다.
영조시대의 실학자 홍대용을 비롯한 여러 사신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두창집(痘瘡集)>이나 <납약증치방(臘藥症治方)> 등의 의약서에도 나온다.

오랜 동안 사대주의가 비난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니 개탄스럽다.
명품과 진짜를 가장한 짝퉁을 제대로 구별할 줄 알아야 잘 산다.
그래야 최소한 손해보지 않는다.

닷 냥짜리 족자 백 냥에 팔기
옛날 신기하고 진귀한 것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얼마를 주든 사고야 마는 부자가 있었다.
이름난 화공이 그린 그림이나 고려 때 도자기라면 앞뒤 재지 않고 사모았다.
또 자신은 삐뚤빼뚤 글씨를 그리듯 쓰면서도 가치가 있는 붓이며 벼루, 먹이라면 허세를 부려 눈에 띄는 대로 사들이곤 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어떤 약삭빠른 족자 장수가 무릎을 쳤다.
“그래, 이런 사람이라면 내 족자도 얼마든지 팔 수 있을 거야. 못해도 백 냥은 너끈히 받을 수 있을 걸."
그러자 함께 주막에 묵고 있던 동료 하나가 입을 삐죽였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어. 겨우 닷 냥 받던 족자를 백 냥씩이나 받어? 아무리 아무 것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는 양반이래도 백 냥을 주고 족자를 살 리는 없지."
“그래, 맞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옆에 있던 사내도 맞장구를 쳤다.

예쁜 여인이 우산 접어들고 있는 그림
그러자 족자 장수는 부자에게 팔 족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몽땅 내놓으며 내기를 걸었다.
“내일 내가 이 족자를 팔지 못하면 이 족자를 모두 자네들에게 줌세. 그게 내 전재산이나 다름 없어."
이렇게 하여 족자 장수는 이튿날 부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나리,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족자입니다.”
족자 장수는 아주 귀한 보물인 양 조심스럽게 족자를 폈다.
족자에는 어여쁜 여인이 우산을 접어들고 서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림에는 낙관이나 그린 이의 이름조차 없었다.

“나 참, 이게 뭐가 신기한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 빠진 그림 아닌가.”
잔뜩 기대했던 부자는 금세 실망해서 말했다.
그러자 족자 장수는 목소리를 낮추며 다가앉았다.
“이런 희귀한 그림을 흔해 빠지다니요? 이 그림은 날씨에 따라서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는 그림입니다요."
“뭬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느냐?"
“아이고, 나리.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이렇게 우산을 접고 있는 겁니다. 비가 오기만 하면 이 여인이 우산을 쫙 편단 말입니다.”

"아니, 못 믿겠다면 그만두시고..."
족자 장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허허, 설마 그런 요술 그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신기한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고야 마는 부자였지만 이것만은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처음 이 족자를 보았을 때는 너무 놀라 입이 안 다물어졌습지요. 헌데, 저한테 이걸 판 촌부가 도깨비한테서 직접 받은 것이라더군입쇼. 그래서 여기 낙관도 찍혀 있지 않은 겝니다요."
“도깨비? 흐음, 도깨비라면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부자가 자꾸만 말끝을 흐리자 족자 장수는 얼른 족자를 거두었다.
“아니, 뭐 나리께서 정 못 믿으시겠다면 그만두십시오. 이 족자를 탐내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족자 장수는 족자를 들고 일어서려고 했다.
“아니 이 사람아, 급할 거 무에 있나. 좋네, 내가 사지.”
족자가 탐이 난 부자는 얼른 백 냥을 주고 족자를 샀다.

드디어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부자는 족자를 방 정면 벽에 걸어 놓고 매일매일 바라보았다.
만약 족자 장수의 말대로라면 이 진귀하고 신기한 족자를 정승댁에 바쳐 작은 벼슬자리라도 하나 얻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동안 좋은 날씨가 계속 되었다.
그러니 그림 속의 여인이 우산을 펴질 않았다.
“허허, 이거 빨리 비가 와야 확인해볼 텐데.”
부자는 날마다 하늘만 쳐다보며 지냈다.

그러다 일주일이 되던 날 아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억수 같이 퍼부었다.
부자는 체면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다닥 족자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그림 속의 여인은 우산 펼 생각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부자는 혹시나 비가 조금 내리면 우산을 펼까 기대하며 반나절을 기다려 보았지만 여인은 꼼짝달싹 하지 않았다.
‘혹시 방 안에 두어서 그렇나?’

"날강도 같은 녀석, 단박에 쳐죽이고 말겠다!" 
비가 들이치는 처마로 들고 나가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에잇, 이런 날강도 같은 녀석이 있나!”
부자는 그제야 자신이 속을 걸 깨달았다.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그림을 백 냥씩이나 받고 팔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부자는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인들과 머슴들에게 일러 족자 장수가 보이면 당장 잡아들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뜻밖에도 족자 장수가 제 발로 찾아왔다.
“허허, 나리. 우산을 펴든 모습을 보셨겠지요?”
“뭐라고, 우산을 펴?”
족자 장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데다가 아직까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게 괘씸해 부자는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쳤다.
“이 사기꾼아! 나를 잘도 속이고 아직도 그 소리냐? 그런 족자 필요 없으니 당장 백 냥을 내놓아라. 안 그러면 당장 관가에 넘겨 옥중 귀신이 되게 해주고 말테다.”

그런데 족자 장수는 아주 태연한 얼굴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나리? 속이다니요, 제가 말입니까요? 대체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까요?”
하고 물었다.
“아니, 이놈이! 그래도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시치미를 떼? 족자 속의 여인은 어제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도 우산 펼 생각은커녕 꿈쩍도 안 했느니라.”
“허허, 그것 참 이상하네. 내가 가지고 있었을 때는 몇 번이고 우산을 잘도 폈는데…….”

"혹시 밥은 제때 주셨는지...?"
족자 장수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아니, 이젠 무슨 핑계를 대려고 그러느냐?”
“핑계가 아니옵고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는뎁쇼, 나리. 혹시, 그림 속의 여인에게 제때 밥은 먹였습니까요?”
“아니, 그림이 밥을 어떻게 먹어? 이런 말 같잖은…….”

그 순간 족자 장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럼 그렇지요, 그러니까 저게 신기한 그림이지 않겠습니까요. 저 여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우산을 펼 힘도 없었던 겝니다.”
“아니, 정말 밥을 먹는단 말인가?”
“정말이고 말굽쇼. 오늘부터는 제 때에 밥을 먹여 보십시오. 제가 보니까 여인네라 그다지 많이 먹지는 않더군입쇼. 그러면 틀림없이 우산을 펼 겁니다요.”
어느새 부자는 자신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족자를 팔 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잖나.”
“예,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나리 댁을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요.”

토라진 여자가 마음을 돌리려면...
부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족자장수는,
“헌데, 토라진 여인이 마음을 풀고 밥을 먹으려면 하루 이틀쯤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요. 왜, 여인네들이 잘 토라지고 그러지 않사옵니까.”
덧붙이고는 성큼성큼 대문을 나섰다.
“저는 요 옆 마을을 돌아 닷새나 엿새 후에 다시 올 터이니, 그때까지도 여인이 마음을 풀지 않으면 제가 나서봅지요.”

그러고는 두 번 다시 그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자는 족자 장수의 말대로 당장 여인에게 밥을 주었다.
그러나 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자, 자기가 보고 있어서 그런 줄 알고 자리를 피해주기도 하고, 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 줄 알고 상을 다시 보아 오게도 하고, 밥상 옆에서 족자를 보고 이런저런 말로 마음을 풀도록 구슬리기도 했다.
얼마 안가, 마을에는 부자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원,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