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옛날식 재테크 방법-닭이 되고 돼지가 되고...

 

‘사내 팔자는 장가를 들어봐야 안다.’
‘집안이 잘 되려면 남의 식구가 잘 들어와야 한다.’

모든 사회는 가족이 기본단위이다.
가족 구성원 중에 살림살이를 잘 꾸려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잘 살 수 있다.
 
예로부터 돈을 경시하고 천박한 일로 여겼던 우리 민족도,

 


그래서 여자들에게 살림을 맡겨왔지만 은연중에 “사실은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많았다.

근검 절약의 미덕을 강조한 것 이상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에 관심을 보인 속담이나 옛이야기는 의외로 자주 목격되고 있다.

재산 털어먹기는 눈 깜짝할 새
옛날에 한 사람이 농사를 잘 짓고 아껴 모은 덕에 살림을 제법 일구게 되었다.
아들 셋을 둔 아버지가 나이 들어 유산을 어떤 아들에게 물려줄까 고민하였다.
보통처럼 하자면 적자상속의 원칙에 따라 큰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당연하고 뒷말도 없겠지만, 유산도 함부로 물려주면 오히려 해가 되고 죄가 되는 줄 알기에 망설여졌다.

아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재산 털어먹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오히려 며느리의 생각과 행실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며느리들의 지혜를 시험한 후, 그 중 가장 똑똑한 며느리에게 재산을 물려줄 작정을 하였다.

"시아버지가 노망이 나셨나?"
시아버지는 어느날 세 며느리를 불러 말했다.
“내 너희들에게 소중한 볍씨 한 톨씩을 줄 터이니 잘 간수하거라. 내 나중에 확인을 해볼 터이니.”
‘이까짓 볍씨 한 톨을 주면서 간수하라니, 벌써 노망이 나셨나?’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찌 시아버지 앞에서 말대꾸를 할 수 있겠는가.
아무 말도 못하고 두 손으로 볍씨 한 톨씩을 받아 “예” 하고 물러날 수밖에.

“망령이 나도 곱게 나야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담.”
첫째 며느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고 생각도 하기 싫어 시아버지가 준 볍씨 한 톨을 그냥 까먹어버렸다.
“소중한 볍씨라니? 생긴 모양도 색깔도 다를 것 하나 없이 똑같은데.”
둘째 며느리도 별 생각 없이 들여다보다 마루 위에 두었더니, 생쥐 한 마리가 잽싸게 나와 물고 가버렸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시험
“다른 볍씨와 같지만 이걸 주실 때는 분명 무언가 생각하신 게 있을 텐데, 그게 무얼까?”
셋째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목적을 알 수 없는 시험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참새가 마당에 앉았다 날았다 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으로 덫을 놓아 새를 잡아볼까?’

복이 있는 며느리였는지, 아니면 지혜가 있는 며느리였는지 몰라도 볍씨를 그냥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쌀 한 톨을 미끼 삼아 마당 한가운데 두고 그 위에 바구니가 떨어지게 해놓았다.
조금 후, 참새 한 마리가 볍씨를 쪼아 먹으려고 날아오자 바구니를 받치고 있던 막대기를 묶은 끈을 탁 잡아채 잡았다.

아하, 참새도 약에 쓰는구나
새를 잡기는 했지만 딱히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로 묶어 아이가 데리고 놀게 하였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약에 쓴다고 참새를 구하러 다니다가 아이가 가지고 노는 참새를 보더니, 셋째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우리 영감이 병에 걸렸는데 참새가 좋다고들 하지 뭔가. 내 자네에게 한 푼을 줄 테니 참새를 주게나.”

말만 하면 그저라도 줄 것을, 그냥 받으면 약효가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쥐어주는 동전 한 푼을 받고 참새를 내주었다.
졸지에 쌀 한 톨이 한 푼이 된 셈이다.
이 며느리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망설였다.
쓸려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액수지만, 시아버지의 당부도 있었던 터라 그냥 쓰기도 뭣했다.
그래서 병아리 한 마리를 사게 되었다.

신통방통한 일-이것이 재테크다
그러고서 생각해보니 정말로 신통한 일이었다.
볍씨 한 톨이 참새가 되고, 그 참새가 동전 한 푼이 되더니, 이제는 병아리 한 마리가 된 것이다.
셋째 며느리는 그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 병아리를 정성껏 키웠다.
병아리도 그 정성을 아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서 튼튼한 암탉이 되었다.
그리고 날마다 달걀을 낳았다.

셋째 며느리는 그 달걀을 어미가 잘 품게 하여 병아리로 만들었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세 마리가 되고, 그렇게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일곱 마리……점점 병아리 수가 불어나다가, 나중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닭이 되었다.

며느리는 그 닭들을 팔아 돼지 새끼를 한 마리 샀다.
닭을 키우던 정성으로 돼지를 돌보니, 이 돼지도 잘 자라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
이번에는 며느리가 돼지 몇 마리를 팔아 송아지를 샀다.
같은 방법으로 소를 키우니 어느덧 세 마리나 되었다.
볍씨 한 톨이 세 마리의 소가 된 셈이었다.

"내가 준 것을 모두 내놓아 보거라"
그렇게 삼 년이 지난 어느날, 불현듯 시아버지가 며느리들을 불러모았다.
“그래, 내가 전에 준 볍씨 한 톨은 어찌 되었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첫째와 둘째 며느리는 자라목처럼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까먹어 버렸노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대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얼른 둘러댔다.
보통 볍씨와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 설령 다시 가져와 보라고 하더라도 아무 거나 가져오면 어찌 알겠나 싶었다.
생쥐가 물고 갔다고 대답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닭, 돼지, 송아지, 소 등
시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셋째 며느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셋째 며느리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해놓고는 닭장에 가서 닭 대여섯 마리, 돼지우리에 있던 돼지 두 마리, 그리고 송아지 한 마리와 어미소 두 마리를 줄레줄레 몰고 들어왔다.

“제가 아버님께 받은 볍씨 한 톨이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아뢰었다.
결론은 ‘볍씨 한 톨이 집안 재산이 되었습니다’는 것이었다.

"옳커니, 바로 그것이니라!"
“옳커니, 바로 너로구나.”
시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이제부터 살림은 막내가 맡고, 맏이와 둘째는 백 냥씩 줄 터이니 그것으로 벌어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한 연후에 들어오너라.”

이렇게 해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집안 살림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맏이와 둘째도 몇 년간 고생을 한 끝에 살림을 일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어 나중에는 모두들 화목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