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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자식에게 재산 물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농사는 쉽지 않은 화두였다.
‘자식 잘 두면 보배요, 잘못 두면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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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같은 자식을 두어 두고두고 속을 끓이고, 심지어 자식 손에 저승길로 서둘러 쫓겨가는 부모까지 심심찮게 신문이며 방송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착잡해질 수밖에 없다.

‘자식에게 금상자를 물려주는 것보다 책 한 권을 물려주는 것이 낫다.’
예로부터 내려오던 속담도 막상 부잣집 아이들이 공부 잘 한다더라는 기사 한 줄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하기야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런 속담까지 미리 만들어 두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을 낳나?’
아무리 금지옥엽이야, 애지중지 해도 나중 일이야 모르는 것이다.

거지 아낙은 배가 남산만 해서...
옛날 자식도 없이 단둘이 사는 내외가 있었다.
자식은 없어도 금실 좋고 인심 좋고 살림살이도 그만해서 남부러울 것 없었다.

하루는 처음 보는 웬 거지 아낙이 쭈뼛거리며 밥을 얻어먹으러 왔다.
그래서 평소 하던 대로 밥을 한 그릇 퍼다주고 가만히 보니, 거지 아낙의 배가 남산만 해서 금방이라도 아이를 낳을 것 같았다.
그런 몸으로 여기저기 유리걸식하는 것이 안쓰러운데다가 남편도 없어 보였다.

“보아하니 홑몸도 아닌데, 아이의 아비는 어디 가고 혼자서 그러고 다니오?”
물어봤더니, 서글프게 웃기만 할뿐 대답이 없었다.
“이제 곧 아이가 나올 것 같은데, 몸이라도 풀 데가 있기는 하우?”
다시 물으니, 여전히 대답은 않고 눈물만 주루룩 흘리는 것이었다.
이 모양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집에는 방이 많으니, 몸 풀고 몸을 추스릴 수 있게 해드리게.”

이렇게 해서 주인 내외는 거지 아낙을 제 집에 두기로 했다.
극구 사양하는 걸 몸 풀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쉬라 하고, 방 하나를 치워 거기서 묵게 했다.
거지 아낙은 고마워서 절을 열두 번도 더 하고,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저와 남편은 본래 저 남쪽 바닷가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과거보러 떠난 남편이 일 년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기에 남편을 찾으러 나섰다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시 돌아가려 해도 뱃속의 아이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되어 이 꼴이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은 아낙은 그만 죽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거지 아낙은 좀 마르기는 하였지만 정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주인 내외는 자기들 일처럼 좋아하며, 사방에 금줄을 치고 아이와 어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부부가 같이 산지 20년이 넘도록 아기 울음소리 한 번도 안 나던 집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마치 딴 집이 된 것처럼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활기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였다.
아이를 낳은 후, 아낙이 그만 노독에 산독이 보태어져 그만 죽고 말았던 것이다.
주인 내외는 슬퍼하며 후히 장사 지내고, 아이는 마땅히 보낼 데도 없는지라 자기들이 맡아서 기르기로 했다.

비록 남의 아이라 해도 복덩이 같은 아들이 생겼으니 경사였다.
주인은 아이를 자기 호적에 넣고, 자기가 낳은 아들인 양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
동네방네 업고 다니며 동냥젖을 얻어먹이고 암죽을 해먹였으며, 밤낮으로 어르고 달래어 온 동네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고이고이 키웠다.

그런데 아이가 막 걸음마를 할 무렵, 좋은 기운이 다른 좋은 일을 불러들인 것인지 또 경사가 생겼다.
그토록 오랜 동안 바라고 바랐건만 생기지 않던 아이가, 뜻밖에도 다 늦게 생겨 진짜 자기 아들을 턱 낳았던 것이다.
“허허허, 경사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도다. 허허, 허허허.”
자식 없는 집에 아들 하나 생긴 것도 감지덕지인데, 한꺼번에 둘을 얻은 셈이니 벌어진 입이 도무지 닫히지 않았다.

남의 자식, 내 자식
따지자면 하나는 남의 자식이요 하나는 내 자식이니 정이 더 가고 덜 가는 차이가 있으련만, 워낙 심성이 맑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어서 털끝만큼의 차이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도 저절로 부모의 마음을 닮아 바르고 착하게 자랐다.
본래 아비 어미가 다르니 성격이 다를 만도 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 배에서 난 친형제처럼 꼭 같았다.
성격뿐만 아니라 생긴 것까지도 준수하니, 모르는 사람들은 친형제를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더 바랄 것이 없구려.”
두 내외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은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되고, 두 내외는 칠순을 바라보는 백발노인이 됐다.

하루는 내외가 이것저것 의논을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 둘을 불러 앉혔다.
“우리가 이제 죽을 날도 멀지 않았으니 너희들에게 사실을 다 말해주고, 재산도 물려주기로 했다.”
“당치 않은 말씀하지 마세요. 더 오래 사실 테니, 그런 말씀은 거두세요.”
두 아들은 부모를 말렸다.

“아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비밀이 있어. 가만히 들어 보거라. 우선 재산문제부터 말해야겠구나. 어느 집이든지 맏이가 할 일이 많으니 맏이에게 다 물려주고, 둘째에게는 집 구하고 먹고 살 만큼 남겨주도록 하마.”
“안 됩니다, 아버님. 똑같이 나누어야…….”
둘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맏이가 다시 나섰다.
“더 들어 보거라. 지금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건 너희는 다같이 소중한 우리 자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너희들을 조금의 차이를 두지 않고 길렀음은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일이다.”

"맏이에게 다 물려주겠노라..."
이렇게 서두를 뗀 다음,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고 이러저러해서 맏이가 우리 자식이 되었노라 말하였다.
그리고 맏이는 핏줄을 타고난 자식은 아니지만 정리는 눈꼽만치도 헐함이 없으니 재산을 맏이에게 물려주겠노라 했다.

맏이는 놀라고 또 놀랐다.
저는 여태 제 부모가 친부모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친부모가 아니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친자식도 아닌 저한테 재산을 다 물려주겠노라 하니 더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도
“형님,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은 나한테 둘도 없는 형님이우. 제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우.”
동생마저 맏이 노릇을 계속하라고 하니,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맏이는 며칠 동안 끙끙 앓다가 결국 집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저는 남의 자식이요 아우는 친자식인데, 저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차라리 자기가 없으면 아우가 맏아들에 외아들 대접을 받고 재산도 다 물려받을 것이고, 응당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왔다.

맏이는 집을 나가고 마는데...
“그동안 키워주신 은혜는 살과 뼈가 썩어 문드러진다고 해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할진대, 하물며 재산을 조금도 아니요, 전재산을 저에게 주신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부득불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땅히 머리를 잘라 짚신을 삼아서라도 은혜에 보답하여야 하겠지만, 오히려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갚을 수 없는 은혜만 태산처럼 쌓일 것 같아 길을 나섭니다. 배은망덕하다 마시고,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맏이는 없고 이런 편지 한 장만 남아 있었다.
부모가 놀라서 그 길로 맏아들을 찾아 천지를 헤매고 다녔다.

집을 떠난 맏이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가다 보니 바닷가에 이르게 됐는데, 바다 맞은편 벼랑 위에서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뭐가 저렇게 시끄럽게 하나 싶어 가만히 보니, 원숭이 새끼들이 벼랑 위에서 바다 쪽을 보면서 마구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그래서 바다 쪽을 보니 어미 원숭이가 모래 위에 엎어져 있는데, 커다란 게 수십 마리가 집게발로 원숭이를 집어서 바다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미 원숭이가 먹이를 구하러 바닷가에 내려갔는데 게란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붙잡은 것 같았다.

“아니, 저 놈들이…….”
그걸 보고 맏이가 달려가서 막대기를 휘둘러 게를 쫓고 원숭이를 구해주었다.
그러니 새끼 원숭이들이 좋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러고 나서 맏이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으려니까, 아까 그 어미 원숭이가 다시 벼랑 위에 나타나서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더니 벼랑을 타고 쪼르르 내려와서 옆에 놓아둔 괴나리봇짐을 냉큼 집어 가지고 달아나버렸다.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짐을 빼앗긴 맏이는 어이가 없었다.

“저런 배은망덕한 놈의 짐승을 봤나. 저를 살려 준 은공을 갚지는 못할망정 은혜를 베푼 사람의 봇짐을 채 가다니.”
그 속에는 헌 옷가지와 짚신 두어 켤레가 들어 있을 뿐이지만 그게 없으면 먼 길을 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아까 그 원숭이가 또 벼랑 위에 나타나서 이리저리 힐끔거렸다.
그러더니 또 벼랑을 타고 쪼르르 내려와서 이번에는 아까 가져간 봇짐을 도로 맏이 옆에 갖다 놓았다.
“무슨 놈의 원숭이가 남의 보따리를 훔쳐갔다가 돌려줬다가 쓸데없이 장난을 치는가? 아니면 내 말을 알아들은 겐가? 어찌 됐든 내 봇짐을 도로 찾았으니 됐지 뭐.”

괴나리봇짐을 메고 가는데...
봇짐을 어깨에 둘러메고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 가다보니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말 탄 군사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자기에게로 달려왔다.
“게 섰거라! 이노옴, 당장 거기 서지 못할까?”
분명 자기를 보고 그러는 것이었다.
맏이는 놀라서 우뚝 섰는데, 군사들이 순식간에 에워싸더니
“그 괴나리봇짐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는 거였다.

별 싱거운 사람들 다 보겠다 싶었지만 사람을 잘못 보았겠거니 하며, 헌 옷가지와 짚신 두어 켤레 뿐이라고 대답했다.
“네 이놈, 거짓일 경우 경을 칠 줄 알아라. 어서 그 봇짐을 끌러 보아라.”
명령했다.
그런데 끌러 놓고 보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그 속에 번쩍번쩍하는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걸 보고 군사들이 대뜸 달려들어 오라를 지우고 호통을 쳐댔다.

“이 천하에 몹쓸 도둑놈 같으니라고.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이웃 나라에서 우리 나라님께 바치려고 실어 오던 보물이다. 그 귀한 걸 훔치고도 살아남기를 바라느냐?”
생각해 보니 원숭이들이 저희 딴에는 은공을 갚는다고 보물을 훔쳐서 봇짐에 들어 있던 것과 바꾸어 넣은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이것 좀 보시우. 그게 아니라…….
맏이는 마구 허우적거리며 해명하려고 했다.
꼼짝없이 큰 도둑으로 몰렸으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졸지에 도둑으로 몰려 죽게 되었는데...
“시끄럽다, 이놈. 할 말 있거든 사또 앞에 가서 실컷 하거라.”
맏이는 관가로 끌려갔다.
관가에서는 나라 보물을 훔친 도둑을 잡았다고 난리법석을 떨며 문초도 안 하고 죽이려들었다.
증거물이 뚜렷이 드러났으니 문초고 뭐고 필요 없다는 거였다.
아무리 울부짖으며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기야 원숭이가 보물을 훔쳐다 줬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나라 보물을 훔친 도둑을 처형한단다, 우리 구경 가자!”
큰 도둑을 처형한다는 소문이 나니 온 고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그런데 마침 이 때 맏아들을 찾아 헤매던 늙은 내외도 소문을 듣고 그 자리에 오게 되었다.
혹시나 구경꾼들 틈에 맏아들이 있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구경꾼 중에는 없고 형장에 끌려 나오는 피투성이 죄인을 가만히 보니, 그게 바로 맏아들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짜고짜로 아들 앞에 나아가
“아이고, 이게 다 어찌 된 일이냐? 천석꾼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 네가 도둑이라니, 잘못된 거다.”
군사들에게 밀려나도 또 밀려나도 붙잡고 또 붙잡고, 마침내 사또 앞에 나가 애원을 했다.
“사또, 저 아이는 우리 아들이온데 절대 도둑질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 부모가 수천 금 재산 물려주는 것을 받기 싫어 집을 나간 놈입니다.”

사또가 들어보아도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두 내외가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했다.
맏아들이 죽게 생긴 판국에 못할 이야기가 없었다.
과거 보러 간 남편이 오지 않아 찾아나선 거지 아낙을 거두어 아이를 얻은 일부터 시작해서, 두 아들이 커온 내력과 재산을 물려주려 했다가 집을 나간 일까지 세세하게 빠뜨리지 않고 아뢰었다.
하나라도 빠뜨렸다가는 아들이 죽기라도 할 것처럼.

사또가 그만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그랬더니 사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러더니,
“그 때 그 거지 아낙이 혹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라는 말은 하지 않더냐?”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나는지라 아무데 사는 아무개라고 하더라고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사또가 깜짝 놀라면서 그만 두 눈에 눈물을 줄줄 쏟았다.

알고 보니 천만 뜻밖에도 이 고을 사또가 바로 그 거지 아낙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사연인즉 그 때 과거 보러 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급병을 얻어서 쓰러졌는데, 병이 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일년이 지나 있었다.
집을 찾아가니 아내는 벌써 자기를 찾으러 떠나고 없었다.
그 뒤로 아내를 찾으려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 장원급제하였는데, 더 중요한 직책을 맡으라는 것도 마다하고 원이 되기를 자청하여 이 고을 저 고을 옮겨 다니며 수소문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들아, 내 아들아.”
“아버님.”
그렇게 맏이는 친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도둑이라는 누명도 벗었다.
맏이는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와 친아버지를 다같이 모시며 잘 살았다.
당연히 재산은 받지 않았는데, 둘째도 형이 받지 않는 재산을 자기가 받을 수 없다면서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남은 이야기...
거짓말 같다고?
옛날 이야기니까 그렇지,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지 아낙 이야기, 친자식과 남의 자식을 똑같이 돌본 부부 이야기, 특히 재산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한 아들들 이야기 등등.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는 게 세상을 다 줄 만큼의 재산보다 낫다'는 것.
거짓말 같다 딴죽 걸지 말고, 명심에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