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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연예인의 정치 참여, 그리고 '행복한 돼지'

<암퇘지> 마리 다리외세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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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지난 대선 때 얘기다.) 경남도내 9개 대학을 포함한 전국의 42개 총학생회장들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밥그릇 때문에 정의를 포기’하는 처사라는 비난이 줄을 이었고, 실제로 그들은 “청년실업처럼 꺼져가는 희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이념과 가치충돌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 장면2

6일 30여 명의 연예인이 같은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 장면3

수없이 구직에 실패한 젊은 여인 마리는 오직 직장을 얻기 위해 큰 향수판매 회사의 부적절한 요구에 지지선언을 한다. 마리는 그 덕분에 직장을 얻게 되고, 손님들을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며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된다.

■ 혼란과 불안

장면 1, 2에 대한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장면 3은 프랑스 소설 <암퇘지>의 도입부 내용이다. <암퇘지>의 작가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혼란과 불안’을 이야기 한다. 소설이 야기할 ‘혼란과 불안’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인데, 오히려 현실을 대놓고 비꼬는 작가의 언사가 유쾌하게 느껴진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많은 사람을 만나 취재를 하고 또한 수많은 책을 뒤적거려야 한다. 역시 직업적 특성상 여러 장면들을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고 담아두기 일쑤인데, 그러다보면 여러 장면이 한순간 ‘오버랩’ 되어서 하나의 현상 혹은 상징적 장면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요 며칠 사이 몇 건의 뉴스와 <암퇘지>가 딱 그렇다.

소설 이야기를 좀더 하면, 작가는 마리를 통해 프랑스 실업자들의 어려움(혼란과 불안)을 외설과 추잡함, 엽기적 행각 등으로 잔뜩 버무려 보여준다. 아, 우리나라 대학생 혹은 실업자들의 혼란과 불안도 가히 짐작이 된다.

마리는 아무 죄책감 없이 창녀로 살아가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 지향 없이 혹은 윤리적 기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저 ‘행복한 돼지떼!’. 누가 저 돼지떼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암퇘지로 변한 마리는 여러 “기괴한 경험들을 통해, 대재앙 이후 독재자가 군림하는 미래세계를 그려보인다. 마침내 보름달 뜨는 밤이면 늑대로 변하는 이전의 향수 제조업자를 만나 함께 살지만 기쁨도 잠깐, 늑대 사나이는 사살 당하고” 다시 외톨이가 된다. 결국 암퇘지 마리는 우여곡절 끝에 시골로 내려가 숲속에서 영원히 한 마리 돼지로 살아간다는 이야기.

대개 작가적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시작에 대한 결말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당연히 문제적 시작이 없으면 소설도 없다. 소설과도 같은 문제적 시작이 있으니, 앞으로 그 결말은 어떨지?

하아무/소설가

ps-그들은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은 해도 광우병이나 대운하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암퇘지(양장본) 상세보기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직장을 잃게 된 한 가난한 젊은 여인이 향수 가게에 취직을 하고 그곳에서 손님들을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며 많은 돈을 벌지만 자신의 몸이 점점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암퇘지로 변한 여인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숲속에서 영원히 암퇘지로 살아간다는 프랑스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