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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세상 모든 물(物)에서 하느님을 본다

<물(物)과 나눈 이야기>-이현주,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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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물(物), 즉 사물과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돌, 쓰레기통, 그네, 나무젓가락, 열쇠, 안경, 연필, 송곳, 병뚜껑 등등. 매미나 감꽃, 포도, 뼈다귀와도 대화한다.

“또라이 아니야?”

상상해 보시라. 길에 널린 돌을 보고 말을 거는 목사를.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현주 선생은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목사다. 유일신 하나님만 섬겨야 할 목사가 물성을 지닌 사물의 ‘한 말씀’을 듣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 이건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더구나 책을 들춰보면 알겠지만 하나님보다는 제자백가나 부처를 훨씬 많이 인용하고 있다.

가령, 쓰레기통과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너 좀 지저분하구나.”

“그래, 난 지저분하다. 하지만 난 깨끗하다.”

“그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

“세상에 그 자체로 깨끗하지 않은 건 없다. 있다면 깨끗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간의 인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등견예정(等見穢淨)이라 했으니, 더러움과 깨끗함을 한 가지로 본다는 뜻이다.”

겉모양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단정짓지 말라는 말이다.

또라이 아니냐고 검지손가락을 오른쪽 이마 옆에 대고 홰홰 돌려도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문을 열고 마음도 열고 다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만 취할 뿐. 종교가 무엇이고 교파가 어디냐 물으면, “울타리 없는 집에서 산지 오래된 사람한테 언제 담을 넘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대답한다.

사람도 물(物)이니 다른 사물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고, 그러니 돌멩이건 병뚜껑이건 말이 안 통할 리 없다는 것이며, 다만 서로 너무 오래 말을 나누지 않고 지낸 터라 쉽지 않을 뿐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경계 없음을 받아들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이 조화롭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곁가지로 살짝만 가볼까? 이 세상에는 다양한 타자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 다양한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종합함으로써 한껏 다원화된 우리 사회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내부의 타자를 발견하는 일이 우리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페미니즘을 비롯해 환경운동, 동성애자들의 목소리내기인 퀴어이론 등등.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사실 오랫동안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 그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실.

한 가지 더. ‘이아무개’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이현주 선생의 또다른 이름은 관옥(觀玉)이다. 관옥이란 ‘세상의 모든 물(物)에 하느님을 보여 주고, 아울러 세상 모든 물에서 하느님을 본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생명사상의 대부라 일컫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이현주 선생은 스승의 뜻을 잘 받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아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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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지음 | 이레 펴냄
우리 주위에서 항상 접하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물과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 저자는 돌, 나무젓가락, 병뚜껑, 가위 등의 사물들과 대화를 하면서 대화에서 먼저 중요한 건 내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일이고 그러려면 내 생각과 판단을 비워야 한다고 말하고, 사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잊고 있던 더 깊고 넓은 내면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