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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꽉 막힌 머릿속 "뚫어 펑!"

<미술로 보는 20세기>-이주헌,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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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소설가)

생각이 막혔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당연히 글도 안 된다. ‘뚫어 펑’처럼 머리속을 뻥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기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글쟁이는 이럴 때면 으레 자신만의 해결방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책을 마구 뒤적이거나 수집상처럼 사들인다. 영화란 영화를 눈알이 빠지도록 보기도 한다. 며칠이고, 몇 주고 줄기차게 술을 퍼마시기도 하고, 배낭 챙겨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차라리 잘 됐다”고 아예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무위도식을 일삼기도 한다. 아파서 자리에 드러눕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 내 경험이거나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이다.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데, 그림이나 사진 작품을 보는 것이다. 그 어떤 방법보다 생산적인데, 막힌 생각을 틔워주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책꽂이에 이런저런 도록이나 관련 책이 꽤 많이 진열되어 있다. 왜 많으냐고? 생각이 자주 막혀서 그렇다.

<미술로 보는 20세기>는 꽤 여러 번 효과를 본 책이다. 작품을 중심으로 20세기를 관조하고 있어 한 세기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다. 야망의 도시, 관능의 시대, 혁명, 팝 문화, 전쟁, 갈등의 시대, 사상, 여성, 일상, 영화, 테크노피아, 잃어버린 낙원 등 각 장의 제목만 일별해 보아도 20세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지 않는가. 유행과 패션, 에이즈 시대의 성 상품화, 대량생산 시대의 미학 등 시대정신을 잘 잡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품 사진도 많아 활자와 다른 맥락이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장 뤽 고다르는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바로 그 재현의 현실”이라고 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고, 모든 현실을 보여줄 수 없어 예술가를 보낸 것은 아닐까? 화가들에 의해 재현된 현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실과는 또다른 현실과의 뜨거운 만남을 주선한다.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미술사조나 양식사적인 접근법이 아니라 그 기준을 현실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을 아우르는 역사를 통해 미술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 또 하나의 장점은, 종종 미술사가들이 등한히 하기 쉬운 사상의 문제나 이념의 문제, 기술만능, 환경파괴, 제3세계의 문제 등도 빼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특히 즐거운 일은 처음 보는 작가들의 그림을 만나는 일이다. 피카소나 달리, 뒤샹 등 이미 유명한 화가들은 다른 데서도 만날 기회가 있다. 하지만 마우리치오 카텔란 같은 설치예술가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는가. 식탁 의자에 앉아 권총으로 자살한 다람쥐를 만나기 쉽지 않듯이.


미술로 보는 20세기(학고재 신서 19) 상세보기
이주헌 지음 | 학고재 펴냄
20세기에 창작된 미술작품을 통해 100년의 실체와 그 의미를 고찰한 책. 야망의 도시, 관능의 시대, 혁명, 팝문화, 전쟁, 사상, 여성, 영화, 잃어버린 낙원 등 12개 장으로 나눠 원색의 미술작품과 함께 작품의 의 미, 작가의 사상, 미술작품과 시대의 관계 등을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