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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잡사 주절주절

광우병 소 수입 반대-"소야, 뿔을 써라"

소야 뿔을 써라

김상훈


채찍질도 하고
이랴 낄낄 소리도 질렀다만
네 아픔 내가 안다
내 아픔인들
네가 모르겠느냐

소야 서라
그늘 밑에 좀 쉬자꾸나

나도 너처럼
새김질이나 배웠다면
깡그리 털린 이 아픔
몸 안에서 주근주근
묵삭혀나 보련마는
벌거벗은 들판만
번연히 바라보니
이빨만 안 아파도
앓음소리가 치미는구나

장구배미 삿갓배미
돌다락밭 수렁배미
골마다 비탈마다 갈피갈피 덩이마다
어느 이랑엔들 네 발이 안 가고
어느 포기엔들 내 손이 안 갔느냐
풍년이 들었다고
새납소리 섞도는데
마당비 털털 털고 나서 돌아보니
남은 건 헌신짝 같은 가난뿐이구나

세단차만 타는 놈은
가을배가 불러서
시금털털 게트림이
구역질을 돋구는데

주인이 가난해서
외양간도 못 가진 소야
둘이 마주 서서
울자느냐 웃자느냐

우리도 한번 딴길을 밟자꾸나
죽는 길 옆에는 사는 길도 있다는데
중허리가 뚝 부러진
걸채 같은 이 세상을
와지끈 한번
떠넘겨 보자꾸나

소야, 뿔을 써라
날창같은 뿔을 써라
이판 사판 막판이니
나도 한번
힘을 쓰마

김상훈 시인-1919년 경남 거창 출생/서울 중동중학교 졸업/1945년 '협동단 별동대' 사건의로 피검, 해방과 함께 출옥/1946년 공동시집 <전위시인집> 발간/1950년 입북/이후 북한에서 '고전문학편찬위원회'에 소속돼 <한시집>, <이규보작품집> 등 발간/1987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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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일 지음 | 세종출판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