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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논개(연재2)모든 계집을 향한 매질과 욕설 같은 왜구의 행악

<조흔꼿 논개>

낮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南江은 가지 않슴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섯는 矗石樓는 살가튼 光陰을 따라서 다름질침니다
論介여 나에게 우름과 우슴을 同視에 주는 사랑하는 論介여
그대는 朝鮮의 무덤가온대 피였든 조흔꼿의 하나이다 그레서 그 향기는 썩지 안는다
-한용운, <論介의 愛人이 되야서 그의 廟에> 중에서

2.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었지요. 죽었다가 다시 얻은 목숨이니 다시 죽는다 해도 두려울 것은 없답니다.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적의 노략질을 보면서 저는 쭉 삼촌 주달무를 떠올렸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떠오르는 걸 막지 못했답니다. 저는 이미 다 잊혀진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새록새록 생각나는 걸 보면 제 의식 너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깨어있으면서 내내 악몽에 시달렸답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왜구의 함성이 고주망태가 된 삼촌의 주정질과 겹쳐 들렸지요.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사라지지 않더군요. 왜놈들이 기습 공격을 하는 밤에는 오히려 소리가 더 크게 울려와 가슴까지 졸아들게 했습니다.

삼촌은 아버지의 형제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검측측(어둡고 욕심이 많음)했지요.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만 아니었으면, 아버지 없는 집에 모녀 둘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 알면서 든 도둑만 아니었으면 그런 삼촌집에 몸을 기대지 않았겠지요. 어머니 자신보다 저를 더 염려해서 내린 결정이란 걸 저도 잘 안답니다. 삼촌의 겉모골(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기골이 장대하여 호쾌한 듯 보이지만 가탈스럽고 감궃기(음충맞고 험상궃다)가 여간이 아니었답니다.

“네 이년, 네가 조카만 아니었다면 거두어 주었겠느냐? 거두어 주었으면 몸이 부서져라 밥값이라도 해얄 거 아니냐. 요령 피우다간 밥은 고사하고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진종일 일하고도 밥 한 술 못 얻어먹을 때도 많았지요.

“네년이 뭐 한 일이 있다고 꼭꼭 밥 챙겨 먹으려는 게냐? 해봤자 지 일 아니라고 대강대강 얼버무리고 말았겠지. 내 안 봐도 훠언하다.”

그러면 어머니는 설거지 하다가 남은 밥덩이를 못나게 뭉쳐 만든 주먹밥이나 누룽지를 몰래 건네주곤 하셨지요. 눈물을 찬 삼아 억지로 주먹밥을 삼키던 것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네요. 하기야 그마저도 숙모가 늘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어서 쉽지 않았지요.

어머니 앞에서도 제게 소리 지르고 구박하기 예사였고, 어머니를 대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그리고는 제 주색잡기에 재산 탕진한 것은 생각지도 않고 군식구 때문에 집안 살림이 거덜났다는 생트집을 잡아 급기야 저를 근처 부잣집에 민며느리로 팔지 않았습니까. 조카가 아니라 마치 종년 부리듯 사 년을 밤낮 없이 부려먹다가 종내는 노름빚 갚기 위해 팔고 만 것이었지요.

그대로 팔려갈 수 없어, 부잣집 병신 아들에게 팔려 갈 수 없어서 도망쳤지요. 육십령, 대낮에도 육십 명이 모이지 않으면 사내들도 함부로 넘지 않는다는 험하고 높은 육십령 고개를 한밤중에 넘었지요. 바람소리가 자꾸만 머리꼭지를 붙잡고 쳐다볼수록 한없이 커지는 귀신이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안 돼! 정신 차려. 호랑이에게 붙들려 가도 정신은 놓으면 안 돼!”

귀신에게 붙들려 정신이 아뜩해지려 하면 어머니는 더 큰 힘으로 저를 잡아챘지요. 정신만은 절대로 놓지 말라는 호통과 함께.

그렇게 함양 외가마을에 숨었지만 이내 붙잡혀 장수로 끌려오고 말았지요. 그때,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답니다. 생각해보시어요. 겨우 열다섯 먹은 힘없는 계집아이가 부잣집에 팔려가기로 하여 돈까지 받아먹었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비록 삼촌의 계략에 의한 것이지만, 그게 어디 씨알이나 먹혀드는 세상인가요. 돈 있고 권력 있는 자에게 가까운 것이 법이고, 더구나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 중의 하나인 계집이지 않습니까. 이미 세상을 알아버릴 대로 알아버린 것처럼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답니다.

그렇게 장수관아의 수급비(관아에서 물 긷는 일을 하던 관비)가 된 저는 또 하나의 절망 속에 갇혀 지내야 했었지요. 그래도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삼촌의 매질에서 놓여났다는 것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만큼의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자하고 후덕한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고 간간이 바느질이나 하던 계집아이가 견뎌내기엔 너무나 가혹한 나날들이었지요. 일, 일, 일, 욕지거리, 매질, 그리고 ……계집종에게는 정조도 없다고 생각하는 뭇 사내들. 그 속에서 저 같은 계집의 목숨 따윈 아무 것도 아니었지요.

“눈물을 자주 보이지 말거라. 아무리 영특하고 재능이 있는 이라도 눈물은 스스로를 좀먹게 되는 법이거든.”

김씨부인이 제 등을 토닥이며 늘 해주시던 말씀입니다. 아마도 김씨부인과 영감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때 영원히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김씨부인이 돌아가시기 전 영감을 설득해 저를 측실로 삼은 것도 절망 속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뜻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그늘에 묻혀 지내는 동안에 저는 가난했지만 안 해본 것 없이 다 하면서 자랐지요. 무남독녀로 귀염만 받으며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걱정 없이 글공부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계집애는 욕 밑천’이라느니, ‘계집은 사흘만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는 따위의 속담은 들어본 적도 없고,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삼촌의 욕지거리와 매질, 수급비 노릇 한 것이 저를 죽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온전히 되살려놓은 계기이기도 했답니다. 한 목숨 온전히 바쳐야 자신은 물론이고 여럿까지 음덕을 나눠주고 윤회생사의 끝자락이나마 붙잡을 수 있다는 게 불가의 가르침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디 저를 책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하려는 일이 나라를 구하려는 구국의 일념에서 비롯된 것인지, 측실로서 지아비를 따라 열부가 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저로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다고 하면 너무 거창해서 도무지 제 역할이 아닌 것만 같고, 아니라고 하면 별다른 의미를 갖다 붙일 게 없었답니다. 그렇다고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에 대한 복수도 아니고, 살아갈 자신감이 없어져 절망감에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요.

굳이 생각해보면, 그저 왜놈들의 행악을 보면서 삼촌의 무지막지한 매질과 욕지거리가 생각났을 따름입니다. 조그만 계집애에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계집을 향한 매질과 욕지거리. 부지깽이나 싸리비는 몸에 멍자국을 만들었지만, “자빠지면 보지뿐인 계집년” 운운하며 내지르는 욕설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마음속에 내었지요.

도대체 저들은 무엇을 바라고 저다지 짐승도 저지르지 않을 패역무도한 짓을 일삼을까요? 계집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났으면서 계집을 욕보이는 저 이율배반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예전에 났던 멍자국은 이미 없어졌지만 마음속 깊은 의식 저 너머에 자리잡은 상처는 그대로였던가 봅니다.

 

논개(위대한한국인 6) 상세보기
정동주 지음 | 한길사 펴냄
1593년 6월 29일 진주성 함락 후 벌어졌던 왜군들의 전승 축하연때 적장을 살해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설과 역사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의기 논개의 일생과업적을 조명한 책. 논개의 길을 찾아서, 운명, 죽어서말하는 논개 등 9편으로 나눠 사진과 함께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