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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소설

논개(연재3)조선의 여인에게 자존심을 꺾인 왜구의 표정은...

<조흔꼿 논개>

3.

 



늙은 보부상은 은밀히 국향이라는 기생을 제게 소개해주었습니다. 진주 관아에 소속된 기생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행수기생이었지요. 마흔도 훨씬 넘어 보였는데 여전히 자태가 곱고 예뻤습니다. 보통은 ‘계집 나이 서른이면 환갑’이라고 하지만 국향은 완숙미가 더해져서인지 제가 봐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답니다.

“아이구, 마님.”

국향은 저에게 넙죽 절을 하고는 낮게 흐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영감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시를 들려주었지요.

“촉석루의 세 장수는 술 한 잔을 나눠들고 웃으며 남강물을 가리키노라. 저 강물이 흘러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혼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矗石樓中三壯士一杯笑指長江之水流滔波不竭兮魂不死)”

저는 가만가만히 그 시를 입속으로 되뇌어 보았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그때의 비장한 장면이 선명히 그려지고 영감의 곧고 아름다운 수염이 떠올랐습니다.

“하오나 마님, 뜻은 잘 알겠사오나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국향은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여인이었습니다.

“쉽게 보지 않았네. 어려운 만큼 자네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렇게 보자고 한 것이고.”

“마님 혼자서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기생들이 왜장들을 하나씩 붙잡고 남강에 뛰어들면 더 낫지 않겠는지요?”

그네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닐세. 무리한 계획은 성공하기가 어려운 법, 한꺼번에 왜장들을 물가로 몰아가는 게 쉽지 않거니와 자칫 더 큰 희생만 불러올 뿐이네.”

“하오나…….”

“이건 상징적인 일이라네. 왜장들을 모조리 다 죽인다면 더 효과가 크겠지만 실제로 그리 되기는 어렵지. 도요토미가 절치부심하고 이 자그마한 진주성을 치려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자존심 때문일세. 그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려고 첫 진주성 싸움 때의 여섯 배가 넘는 십이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을 다시 친 것이지. 지금 저 놈들은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희희낙락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자존심을 다시 꺾어버리자는 것일세.”

국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 생각해 보게. 한낱 노리개로밖에 보지 않았던 조선의 여인에게 자존심을 꺾인 왜구들의 표정. 그뿐만이 아닐세. 이 땅의 선비를 비롯한 사내들이 생각지도 못하고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해내 보자는 것일세.”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전쟁은 사내들의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오히려 여인들과 어린것들입니다. 사내들의 필요에 의해 야기된 전쟁, 그것이 정치적인 계산이나 권력욕에 의한 것이든 다른 이유에 의한 것이든, 왜 그들의 전쟁에 희생되어야 할까요? 이 불합리에 사태를 막기 위해 사내들이 나서고 여인네들은 그 뒤에서 돌을 나르고, 물을 끓이고,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일 따위를 돕는 게 거의 전부였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양가의 규수가 적의 노리개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예로부터 큰 미덕이 되어왔네. 여인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인 셈이었지.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생각을 바꾸면 사내들이 할 수 없고 하나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지.”

국향은 제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요, 마님.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 때문에 며칠을 속앓이만 했습니다. 싸움이 한창일 때는 관군들의 밥도 해주고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나르며 가슴 뿌듯한 기쁨을 맛보았답니다. 그런데 진주성이 떨어지고 난 후, 저놈들의 요구에 따라 방기(房妓, 관원들을 하룻밤 모시기 위해 방에 배정해주던 수청기생)를 제 손으로 배정하자니 죽을 맛입니다요. 게다가 왜장의 수가 워낙 많아 기생들만으로는 부족해 다모(茶母, 차를 끓이던 관비), 식모(食母, 밥상을 차리던 관비), 침모(針母, 바느질하던 관비)까지 동원해 방비(房碑)로 들이고 있는 판국입니다. 에나로 제가 제 손등을 찍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마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을 제대로 찾은 것 같습니다.”

저도 국향의 손을 마주잡으며 기적(妓籍)에 제 이름을 올려 달라고 했답니다.

“하오나 마님, 그러면 후대에까지 기녀로 남게 될 텐데…….”

“관계 없네. 왜놈들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는 어려울 수밖에 없네. 놈들을 제대로 유인하려면 기적에 올리는 것 외에도, 춤이나 소리를 조금 배워두어서 흉내라도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춤이나 소리가 하루 이틀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제가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장수 관아의 수급비로 일할 때 그곳 관기들이 연습하는 걸 본 적이 있지요. 행수기생의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발이 부르트고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연습하던 것을요.

“나는 지금 세조대왕 시절 궁중연회에 자주 불려나갔던 네 기녀(옥부향, 자동선, 초요경, 양대)처럼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네. 그저 왜장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면 되는 것이지.”

그래도 국향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 입을 떼었습니다.

“악기나 소리는 당장은 어려우니 춤사위를 조금 익혀 두십시오. 제가 진주 제일의 무기(舞妓, 춤을 잘 추는 기생)를 보내드릴 테니, 그 아이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시면 나머지는 모두 제가 준비해두겠습니다. 마님, 그럼 전 이만…….”

“한 가지만 더. 이 다음부터는 마님이라 부르지 말고 그냥 논개라고 하시게. 이제 내 이름이 기적에 오르면 나도 일개 기생이 아닌가? 그러면 자네 수하가 되는 것이니 이름을 부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오나 그건 좀…….”

“내가 하라는 대로 하시게. 그래야 저 놈들도 의심하지 않지. 저 놈들이 털끝만큼이라도 의심하게 되면 일은 틀어질 수밖에 없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국향이 돌아간 후, 저는 어린년이를 불러 앉혔습니다. 주변 정리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 동안 내 곁에서 고생 많았다. 너도 들어서 잘 알겠지만 사흘 뒤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래서 너도…….”
무슨 얘기가 나올지 짐작했는지 어린년이는 벌써부터 훌쩍이며 눈물을 닦기 시작했지요.

“네 살 길을 찾아가거라. 사방에 왜놈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해서 안 되었다만, 어쩔 수가 없구나. 내가 어찌 될 줄 뻔히 알면서 너에게 계속 옆에 있어달라고 할 수가 없구나.”

“안 됩니다요. 지금 제가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요. 아비는 처음부터 몰랐고 어미는 조선팔도 어느 구석에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요. 차라리 나갔다가 왜놈한테 당하느니 여기 앉아 죽겠습니다요.”

듣고 보니 어린년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다만, 여기서는 죽는 게 명약관화하지만 나를 벗어나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요, 마님. 저에게는 적군과 아군이 없습니다요. 요행히 왜놈들을 피해 어느 동리, 어느 산골짝에 들더라도 사내들이 저를 그냥 둘 것 같습니까요? 왜놈에게 당하나 알지도 못하는 사내에게 당하나 제게는 매한가지입니다요. 차라리 이대로 있다가 마님 돌아가시면 시신이라도 수습하게 해주시어요. 영감께서 저를 마님께 딸려 보낸 이유도 끝까지 잘 모시라는 것이었으니까요.”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냥 두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계집아이가, 더군다나 양반가의 처자도 아닌 사노비 신분으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어요. 이제 열다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터질 듯한 가슴께가 오늘따라 더욱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논개(창비시선 47) 상세보기
정동주 지음 | 창작과비평사 펴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동주 시인의 첫 장편서사시. 전 11장 7천5백 행이 넘는 이 힘찬 서사시에서 우리는 16세기 조선조 양반사회의 극심한 타락상과 그 아래서 신음하며 성장하는 평민의식의 전형으로서 논개의 감동적인 일생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