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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작가를 찾아서

평전/김상훈 시인(4)나는 방화범이 되어 모두 불태워 버리리라

<시를 통해 본 시인의 삶>

(4) 아버지와 갈등은 김상훈 시의 출발점

 

보통학교 입학을 두고 아버지와 대립을 시작하고, 또 아버지의 고집을 완전히 꺾지 못해 방과 후에 한학을 공부해야만 했던 일 등은 상훈이 처한 상황과 그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일은 상훈의 시세계에 그대로 반영돼 여러 가지 상징적인 장면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사실상 상훈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지주이자 지역의 유력한 유지였던 아버지는 “대지주들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변모를 거듭하여, 친일을 거쳐 해방정국에서는 한민당에 가입하여 김상훈이 선택한 길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김상훈의 시에 나타난 현실 인식과 역사적 전망>, 윤여탁, 국어국문학 105호, 1991)

다시 말해 아버지는 봉건적이고 반민족적인 구시대적 인물인 반면, 상훈은 진보적이고 민족적인 길을 추구해왔다. 그래서 둘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나중에 상훈으로서는

착취와 탄압과 기만과 군림
자라온 집에 불끄럼이를 던지는
내 용감한 방화범인이 되리라
방화범인이 되리라!
-시 <나의 길> 중 일부

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맞서야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무의식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가고, 또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 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다가 마침내 보통학교 입학을 둘러싸고 표면화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상훈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바로 열두 살 무렵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 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그 계기다.

“가족도 달깃한 꿈도 이미 없어져버렸어도”

양자 콤플렉스는 꼭 그대로의 모양은 아니지만 그의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친부모로 여겼던 부모가 사실은 양부모였던 것, 우리 조국산천으로 알고 살아왔건만 사실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 하는 모습, 해방 후에는 가짜 민족주의자들과 미국에 의해 사실상 민족이 좌우되는 상황이 김상훈의 뇌리에 겹쳐졌을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친부모는 겨우 붙어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어라 일하지만 비참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과, 일제 때나 해방 후에나 보수반동 세력의 억압 아래 여전히 죽지 못해 사는 대다수 민중들의 고난이 마찬가지로 겹쳐져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현실의 고통은 우리 민족 혹은, 민중의 수난과 겹쳐져 표현되곤 한다. 친부모인 줄 알고 “손잡고 가서” 양부임을 알게 되어 “혼자 돌아서던 길”,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숙여진 머리엔 한없는 고독이 휩싸여/자욱마다 자욱마다/눈물이 고였다”(시 <석별>)고 했다. 그런 현실이 너무 아파 “못 배겨/못 배겨/안 울고는 못 배겨” 흐느끼고 있노라면, 자신을 둘러싼 “봄은 가자는데”(시 <종다리>) 자신만 하염없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만다. 그러다 보면 “아아 피어 아름다워야 할 젊음이/곰팡 냄새 매캐한 골방 속에서/빛도 향기도 없이 시”(시 <여자에게 주는 노래>)들고 있는 여성들의 처지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처지를 뼈아프게 자각하기 시작하자 그 전까지 보이지 않던 이웃의 처지도 보이고, 무심히 넘겼던 그들의 신산한 삶과 곤고한 살림살이도 눈에 들어왔다. “올 겨울에도 가야산 깊은 골 안엔/낯익은 소작인이 굶어서 죽을 것이고/여우나 신도야지가 떼지어 내려오는/산마을 양민들이 또 딸을 팔아먹을 것이다”(시 <밤>). “흙을 파먹고 사는 아배는/딸을 팔던 날 밤 통곡했고/기음(機音)에 몸소리를 치는/형의 얼굴은 항시 매말랐다”(시 <맹서>). 게다가 “천한 촌백성이 사는 이 마을엔/어미가 자식을 헐벗겨 떨리고/삽살개 사람을 물어 흔들고/금전과 바뀌어진 딸자식을 잊으랴 애썼다”(시 <전원애화>).

처마가 기둥을 가리지 못하는
군속스러운 집들이 늘어선 거리에
아내의 얼굴들은 고양이를 닮아가고
남편들은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다 지친 모양으로

(중략)

그렇게 배잡게 들어섰어도
석류알처럼 아름답지 못한 연유는
굴뚝마다에 가느다란 연기가
피와 눈물을 태워 이는 까닭이라

한 집에는 정조를 팔아 국이 끓고
한 집에는 사람을 죽인 쌀이 솥 안에 들고
-시 <시민의 집들> 중 일부

“가족도 달깃한 꿈도 이미 없어져버”(시 <다풍지대>)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종들 부리고/비단옷에 호사스리 자란/죄스런 옛날이 아직도 종점같이 남아 있”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나는 아직 한없이 울고 싶”(시 <밤>)기만 하다. 우리집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이라는 자각은 그에게 한없이 서글프게 다가간다. 그러면서 김상훈은 “하고 싶은 말 가지고 싶던 사랑을/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나는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천 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시 <아버지의 문 앞에서>)가게 된다.

지주의 맏아들에서 가난뱅이 편으로 거듭나다

나중의 일이긴 하지만 김상훈은 아버지, 즉 봉건제의 잔재와 반민족적 요소와 결연히 작별을 고하고 그 대척점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시를 통해 밝힘으로써 흔들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가진/양복을 입은 서울 손님/천 근 채질하는 양심의 꾸지람을 들으며/다시 강하게 인민의 일꾼 되리라 맹서한 길”(시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또 결연하게

나는 이제 두 살백이다
지주의 맏아들에서 가난뱅이의 편으로 태생하였다
살부치기를 모조리 작별하고
앵무새처럼 노래부르던 버릇을 버렸다

(중략)

착취와 탄압과 기만과 군림
자라온 집에 불끄럼이를 던지는
내 용감한 방화범인이 되리라
방화범인이 되리라!
-시 <나의 길> 중 일부

“지주의 맏아들”로서 한 살을 살았다면, 이제 민중의 편에서 새로이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민중을 착취해 부자로 살아온 집에 기꺼이 “불끄럼이를 던”짐으로써 단호히 그 동안의 삶을 거부한다. 이는 친일지주인 아버지에 대한 선언에 다름아니며, 당연히 양자 콤플렉스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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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엽 지음 | 친구 펴냄
김상훈 시인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