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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작가를 찾아서

<평전>김상훈 시인(2)빈농의 자식에서 천석꾼의 양자로

<시를 통해 본 시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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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단옷에 종을 부리는 부잣집 아들

김상훈은 1919년 7월 10일 가조면 가야산 밑에서 상산(商山) 김씨 집안의 김채완(金采琓)과 안동 권씨의 둘째아들로 세상에 나왔다. 본적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662번지다. 김상훈의 생가는 겨우 양식이 떨어지기를 면할 정도의 소농가(小農家)로,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하며 살았다. 그렇기는 해도 “어미가 자식을 헐벗겨 떨리고/삽살개 사람을 물어 흔들고/금전과 바뀌어진 딸자식을 잊으랴 애”(시, <전원애화>)쓰는 이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야 새야 너희들은
무얼 먹고 사노

이슬 먹고 바람 먹고
풀잎 먹고 사나

내사 배가 고파
아무래도 못 살겠다

삼시 세 때 송구죽에
소금 한줌 없이

왜 그런진 몰라도
모두 모두 죽어간다

농사 짓는 사람은
모두 배가 고프다

(중략)

엄마 엄마 우리도
오늘밤에 죽어서

옷밥 걱정 안 하는
종달새가 됩시다
-시 <종달새> 중 일부

그런데 김상훈은 태어난 직후 젖먹이 때 이웃에 살고 있던 백부집 양자로 들어갔다. 백부 김채환(金采煥)과 백모 의성 김씨의 양자로 입양된 것이었다. 기실 김채환도 일찍이 양자로 입양되어 집안의 종가를 이끌어왔는데, 김상훈이 그의 양자로 입적되어 종손이 되었다.

김채환도 “사실은 양부도 당대에 치산(治産)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작은집에서 큰집(그의 백부)으로 입양한 따라서 상훈으로선 부전자전의 2대 양자였던 셈이므로, 양자라고 해서 그만이 특별히 주눅이 들 이유는 없었다.”(<변신의 일생과 갈등의 시>, 정영진, 1989년 <문학사상> 198호)

생부는 소농, 양부는 천석꾼

어떻든 생부 김채완이 가난한 농사꾼에 지나지 않았던 데 비해 양부 김채환(이하 김상훈의 부모로 표기)은 천 석의 수확을 올리는 천석꾼의 부자였다. 이로써 김상훈은 가난뱅이 집에서 태어났으나, 입양과 동시에 면내에서도 알아주는 대지주의 아들로서 매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종들 부리고
비단옷에 호사스리 자란
죄스런 옛날이 아직도 종점같이 남아 있구나
(중략)

올 겨울에도 가야산 깊은 골 안엔
낯익은 소작인이 굶어서 죽을 것이고
(중략)

그렇게 순한 눈알을 가진
억울한 사람들의 땀을 빨아 내가 자라서
이젠 아득히 멀어진
어느 잔인한 고향을 또 그리는 것이냐
-시 <밤> 중 일부

김상훈은 한동안 자신이 양자임을 알지 못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 양자임을 안 것은 가조보통학교를 다니고 있던 열두 살 때였다.

김상훈 자신이 그 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한 바는 없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안 이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전후 그의 몸가짐이나 행동의 변화를 통해 유추가 가능할 뿐이다.

자신이 양자임을 알기 전부터 작은집(실제로는 생가)이 밥 굶기를 겨우 면할 정도의 소농가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로부터 곧잘 생계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허덕이는 형편이었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상훈은 ‘양자 콤플렉스’에 젖어 상당한 심적 부담과 갈등을 겪으며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수성이 강한 소년에게 그때까지 믿어왔던 사실, 곧 친자가 아니라 양자였음은 분명 충격적이었음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게다가 생가의 어려운 살림살이도 매우 마음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비단옷을 입고 종을 부리며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생부모는 “손톱에는 장창 거름내음이 나고/옷도 베잠뱅이를 입고/비가 오든둥, 바람이 부든둥”(시 <농군의 말> 중) 언제나 일손을 놓지 못하면서도 “헐벗고 돌부리 틈에서/도면도 못하고 살아”(시 <다풍지대> 중)왔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어린 시절, 즉 “종들 부리고/비단옷에 호사스리 자란” 시절이 ‘종점(腫點)’, 즉 종기처럼 남아 있다고 했던 것이다.

양자 콤플렉스와 심리적 갈등, 그리고 기행(奇行)

김상훈이 “양자임을 안 뒤 문득 어리광이 사라지고 나이보다 걸망한 몸가짐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정영진, 앞의 글) 있다.

이런 양자 콤플렉스는 이후 오래도록 김상훈에게 복합적이고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그로 인해 남다른 심리적 갈등을 겪어야 했는데 자신의 학문을 비롯해 결혼, 사회 진출 등 전반적인 문제로 확산이 되었다.
또한 김상훈은 그로 인해 죄의식과 함께 결벽증을 가지게 된다. 이는 그의 시세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실생활에서도 뒷날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다소 기행적(奇行的)인  자선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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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엽 지음 | 친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