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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작가를 찾아서

김상훈(7)-(세상을 밝힐) 조그만 촛불 하나 들고서

(7) 길이 어둡지만 조그만 촛불 하나 들고서

어머니 덕에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된 상훈은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후에 아버지와의 불화가 지속되면서 더욱 깊어지게 된다.

친일 지주였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상훈이 집에서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재산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편안히 먹고 살 수 있을 텐데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 다른 한편으로, 상훈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세상을 알면 알수록 더 아버지와 자주 부딪히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부잣집 아들로서 나는 자랐다
부모는 나의 목에 칼라를 끼워

 


하녀를 부려먹는 습관을 심어주고
명령을 내리는 요령을 가르쳤으나
나이가 들면서 물정을 알게 되자
나는 이 계급의 무리들이 역겨워졌다
명령을 내리는 것도 시중을 받는 것도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계급을 버리고
비천한 사람들과 동무가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배신자를 키웠던 셈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쫓겨난 것은 당연하다> 중 일부

상훈과 아버지의 사이는 자꾸만 벌어져 갔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와의 사이는 더 애틋해져갔다. 아버지와는 반대로 어머니는 무엇보다 상훈을 믿고 상훈의 편에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젖가슴에 매달려서 아이처럼 우오리다”

상훈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나날이 밝아가고 커질수록 어머니의 삶과 겹쳐짐을 깨닫는다. 눈물과 비탄에 잠기 어머니, 혹은 한 여성의 삶이 그대로 “호탄(浩歎)을 내뿜는 불행한 나의 겨레”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훈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자각은 “오로지 내(상훈) 마음을 집요하게” 해서 “길이 어두우나 조그만 촛불을” 켜서 들도록 했다. 아프고 괴로운 민족의 현실이지만 자애로운 어머니(조국)가 있기에 ‘촛불’ 같은 자그마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겐 그처럼 귀로운 내가 어느덧 눈물을 알고 고독의 친한 벗이 되어 비애를 마시고 호탄을 내뿜는 불행한 나의 겨레일 줄이야 어이 일찍부터 알았겠읍니까.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살과 한가지로 그칠줄 모르고 흐르는 날과 달이 오로지 내 마음을 집요하게 합니다. 그리고 길이 어두우나 조그만 촛불을 가지겠읍니다.” (시조 <헌사십조>의 서문 중)

이 글은 해방을 맞은 후 상훈이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어머니에게 바친 시조의 서문 중 일부다. 자신에게 각별했던 어머니를 위해 시조를 지었는데, 군데군데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어머니의 모습과 겹치는 조국의 현실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요한 마음으로 지난 일을 돌아보고 또 오늘과 내일을 노리고 새삼스리 무능한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는 해방이 되던 1945년 1월에 ‘협동단 별동대’ 사건으로 구속된 것을 비롯해 해방 후에도 좌익 활동에 주력해 여러 모로 걱정을 끼친 것을 두고 한 말인 것으로 풀이된다.

해방이 되고 좌우익으로 나뉘어 혼란한 속에서 “위원회 패라고/ 싸움통에 잘 뛰어든다고/ 두려운 눈초리로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불시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천 사람이 무어라고 해도/ 제가 걷는 길이 바릅니다”(시 <어머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지만, 걱정하는 어머니의 근심을 모두 덜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1948년 30세가 되던 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헌사십수>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보내신 예순한해 길고도 짧사이다
저희들 철없삽고 세상길 험하오니
귀중한 이 한날을 어이 보내오릿가

산같다 이르리까 바다같다 이르리까
가없이 크신 사랑 말로 일러 더하릿가
천백년 뫼시옵과저 기리기리 뫼시과저

불면 날을세라 쥐면 꺼질세라
진자리 마른자리 차울세라 더울세라
금인양 옥인양하여 고이 길러 주신 마음

강보에 싸인 몸은 이처럼 자랐으나
어머님 주름살이 하 그리 많사이다
무심코 바라던 눈이 눈물고여 집니다

이 손 이 머리를 어루만저 주옵소서
젖가슴에 매달려서 아이처럼 우오리다
울거든 달래옵소서 포근히 잠드리다

겨울 긴긴 밤에 질화로에 밤을 구워
두 손에 쥐어주며 먹고자라 하신 말씀
자장가 귓가에 어려 어제런듯 합니다.

품안에 무릎위에 거리에서 학교에서
제몸이 아프올때 흉허물 있아올때
밤새도록 남모르게 울으셨다 하더이다

젠들 크신 사랑 모른다 하오릿가
알아도 못갚나니 안다곤들 하오릿가
그래도 해가 저물면 가슴조려 집니다

길이길이 모시리다 영화로움 뵈이리다
벽위에 칼을 걸고 맹세코 딱으리다
제뜻이 이루어지는날 웃어주시옵소서

장부 칼을 들어 천하를 못 건지나
책상앞 스물네해 너무도 허전하오
이처럼 약한 저오니 어서 매쳐 주소서

상훈에게 어머니는 “젖가슴에 매달려서 아이처럼” 울면서 보채고 싶은 분이자, 약해진 자신의 마음을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단련시켜 줄 수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감, 끝없는 모정

“각 수마다 상훈이 보낸 어린 시절의 정경과, 각 구절마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감이 서려 있지만 전문을 통해 그의 어머니가 상훈에게 베풀던 끝없는 모정의 모습들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정영진, <변신의 일생과 갈등의 시>, 문학사상 198호,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