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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뜨끔해지는 말, "너도 폐경기냐?"-조덕자 시인

<지중해 블루 같은> 조덕자 시집, 문학의전당

남자인 나에게 "이제는 너도 폐경기냐?"고 묻는 것만 같은 시.

폐경기, 호박꽃 같은

조덕자

병원 골목길 돌아 나오자
내 삶이 철조망 벽에 붙어 있다가
한 무더기 불쑥 노랗게 피어났다

여물기도 전
울타리를 위태롭게 감고 오르던 내 생처럼
온몸 타고 흐르는
호르몬 같은 호박덩굴

말라붙은 덩굴손 아래
아직도 바람에 떨고 있는 노란 호박 하나
나처럼 둥근 시간의 집 속에 갇혀
잠이 깊이 들었나 보다

몸속 훑고 지나간 바람쯤이야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거북등껍질 같은 몸 뻗어
꽃 피우고 있다

살아온 만큼 세월의 끝에서
이제는 너도 폐경기냐고
호박꽃이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웃는다

이 구절도 읽는 순간, 은근슬쩍 가슴에 들어와 앉는다.
"마음속에 집 하나 짓는 일, 늘 반복하며 살지만
 칸칸의 방마다 들어앉은 미움의 상처"
(시 <화분을 비우며> 중 일부)

"실제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좀 더 사실적으로 부각시키고 아픈 것은 더욱 아픈 것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시적 태도가 아니어서, 그것을 초월한 것이어서, 그녀의 시는 아름답다. 흉하고 끔찍한 것을 시인이 미리 가려주어서 고맙기까지 하다."(정준영/시인, 문학평론가)

"조덕자 시인의 시는 작은 것에 대한 사랑이다."(도순태/시인)

"조 시인은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사랑의 합주곡을 들려줄 줄 아는 사람이다."(유금오/시인)

""낮고 작은 것들에 대한 맑은 눈을 가진 그녀의 시는 그 깊이만큼 섬세하다."(이궁로/시인)

그러고 보니, 월경을 한지 너무나 오래되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다. 폐경기가 너무 빨리 찾아온 것은 아닐까. 이제 작품활동 제대로 해보려고 일까지 때려치웠는데, 벌써 폐경기가 와버렸다면, 내 작품은 잉태도 되기 전에 사라져버린 건가.

아, 다시 월경을 하고 싶다.

지중해 블루 같은(문학의전당 시인선 48) 상세보기
조덕자 지음 | 문학의전당 펴냄
조덕자 시집『지중해 블루 같은』. 1997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조덕자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삶의 순간마다 일깨워지는 깨달음의 순간들을 기록하였다. 추상적 이미지에 담긴 생의 울림과 진실을 엿볼 수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화분을 비우며> 중에서 마음속에 집 하나 짓는 일, 늘 반복하며 살지만 칸칸의 방마다 들어앉은 미움의 상처 그 고인 상처에 문고리가 녹이 슬어도 용서한다는 것은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