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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잡사 주절주절

우리 가족이 무더운 여름을 맛있게 이기는 음식...

이맘 때가 되면 우리 가족이 유독 맛있게 먹는 반찬이 있다. 열무물김치.

그런데 우리 가족은 유독 한 열무물김치 맛에만 열광한다. 입이 짧아서일까?

아니다. 다른 집에 가서 같은 열무물김치 맛을 보고, 잘 한다는 식당의 아주 다양한 열무물김치를 먹어봤지만 정말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그 김치만 못했다.

빈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집에 와서 열무물김치 맛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담갔길래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묻곤 한다. 그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뭐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맛을 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의 질문에 집사람은 자랑스레 대답한다. "우리 시어머니표!"

솔직히 나도 장모님을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나는 세상에 우리 어머니처럼 음식을 잘 만드시는 분은 없다고 자부한다. 어디서 배운 적도 없고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도 아니어서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맛 하나는 일품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맛을 내는 건 냉장고에 얼마나 많은 재료가 준비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손맛이라고.

각종 블로그나 카페 등 인터넷에 아주 많은 '열무물김치'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걸 보았다. 솔직히 어머니는 그 설명에 나오는 준비 재료의 절반 혹은 많아야 2/3밖에 안 쓴다.

그래도 맛있다. 정말 맛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시어머니, 할머니)의 열무물김치가 없으면 여름을 제대로 나지 못한다.

* 열무물김치 만드는 방법은 여러 사이트에 나와 있으므로 덧붙이지 않는다. 대신 입맛 도는 혹은, 자극하는 시 한 편 올려 자칫 잃기 쉬운 여름철 입맛을 되돌려 보고자 한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
-열무김치

김상훈(시인, 1919-1987)

푸름푸름 풋고추를 다져 넣어서
열무김치를 담그는 날은
뙈약볕도 정이 든다는데
자배기 가득 푸성귀를 버물다 말고
주름살 많은 어머니는
말없이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다

처마 밑에 하나 가득 제비들이 우짖던 날
열무김치를 와작와작 깨물면서
풋바심 보리밥을 그리도 맛있게 먹던
어깨 둥실한 아들이 그리워서
어머니는 소금항아리에 손을 넣은 채
말없이 오솔길을 바라보고 있다

퍼올려도 퍼올려도 끝없는 샘물처럼
삼십 년을 한 대중으로 솟아오르는
그 짜고도 뜨거운 눈물이
눈시울에 고여서 부질없이 넘어날세라

어머니는 소스라쳐 머리를 흔드시고
어느새 조용한 눈길에
믿음을 담아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같이 무덥고 불쾌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날, 풋바심 보리밥 한 그릇에 열무물김치와 함께 고추장 풀어서 쓱쓱 밥 비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