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아무

대운하라는 ‘캐치-22’에 빠진 대한민국

<캐치-22> 조셉 헬러, 실천문학사

화장실 갔다 나오더니 생각이 바뀐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만 해도 싸는 게 급했다. 어떻게든 당선되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했다. 대운하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환경운동가들과 충분히 대화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똥냄새를 맡으면서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에잇, 냄새 나는 것들!”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나오자마자 냄새나는 것들을 몽땅 쓸어버리라고 명했다. 사실은 자기 똥냄새였는데. 그리고 국민적 합의고 약속이고 간에 냄새나는 똥부터 해치우고 생각해보잔다. 사실 그것도 그때 가서의 일이겠지만.

요사리안은 2차대전 중 지중해의 한 공군기지에 근무하는 조종사다. 그런데 이 부대의 대령은 출세하고 언론의 지지를 얻고자 ‘캐치-22’라는 규칙을 만든다. 조종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출격회수를 40회로 정해둔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고 조종사들은 죽음의 비행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령은 출격회수를 40회에서 점차 80회까지 끌어올려 버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결코 부하들을 놓아줄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하나둘씩 미쳐간다. 자신이 폐렴에 걸려 죽을 거라고 믿는 인디언, 신을 의심하는 군목, 창녀만을 사랑해 계속 전쟁터에 남고자 하는 네이틀리, 반대로 창녀만 보면 죽이려고 드는 알피, 전투기로 무역업을 하다가 파산하자 미쳐버려 독일군을 고용해 자기 부대를 폭격하는 취사장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결제하는 장교 등. 모두 ‘캐치-22’라는 규칙에 묶여 곤경에 처한다.

주인공 요사리안은 미치지 않았지만 미친 척해서 출격의 위험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령은 ‘자기가 미쳤기 때문에 출격을 면제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미쳤다는 판단할 정신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미쳤다고 볼 수 없으며, 그 결과 출격을 면제해 줄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들어 다시 전장으로 내몬다.

훨씬 뒤에야 ‘캐치-22’라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 규칙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료가 탈출했음을 알고 그 역시 탈출을 감행한다.

이 소설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캐치-22’라는 표현은 사전에도 올라 있다. ‘(모순된 규칙 따위에 얽매여) 꼼짝 못하기, 모순되는 규칙이나 상황’ 혹은 ‘부조리한 상황이나 딜레마, 진퇴양난의 상태’를 뜻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 “I am in a Catch-22 situation”이라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화장실 갔다온 후 약속을 변기 속에 버린 사람 때문에 ‘캐치-22’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하아무/소설가

PS. 그는 손도 아직 씻지 않고 '미친 소'의 뿔을 잡고 말았다. 이젠 그 뿔을 놓을 수 없다. 놓는 순간 그는 그 뿔에 떠받쳐 죽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Oh, I am in a Catch-22 situation”

캐치-22(하) 상세보기
조셉 헬러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2차 세계대전, 지중해의 한 미군공군기지를 무대로 주인공 요사리안을 비롯한, 비정상적 괴짜인물들을 통 해 전쟁의 허구성을 폭로한 소설. 표제의 캐치는 조항과 함정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