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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작고한 박경리 선생이 남긴 자전소설

≪시장과 전장≫, 박경리/나남...작가가 체험한 삶의 고통 반영한 대서사

박경리 선생의 대표작은 대하소설 ≪토지≫다. 워낙 ≪토지≫에 대한 인지도가 높다보니 상대적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덜한 편이다.

≪토지≫ 이전의 대표 장편소설이 세 편 있는데 ≪김약국의 딸들≫과 ≪파시≫, 그리고 ≪시장과 전장≫이 그것이다. 이 세 편은 ≪토지≫의 준비과정으로 초기 단편에서 개인과 사회와 민족의 비극으로 확대되었다가 ≪토지≫에 와서 그 모든 것이 종합되었다는 것이 평단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 중 ≪시장과 전장≫은 1964년 발표돼 그 이듬해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특히 남편을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거나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전쟁 미망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사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황해도 연백의 연안여고 처녀선생 남지영의 모델이 바로 작가이기 때문.

6.25가 일어나기 직전부터 휴전되기 전까지가 배경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남편 하기석,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유일한 의지처인 홀어머니마저 잃는 남지영, 혼란 속에서도 긍정적인 이가화,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인민과 사상에 충실한 코뮤니스트 하기훈 등이 주인공. 이들이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장 지난했던 시절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는 것.

작가는 50년대의 반공소설 류에서 벗어나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시장, 또 살아있음이 확인되는 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여기서 ‘시장’은 수많은 민중이 고통스런 삶을 영위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공간이고, ‘전장’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공간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는 있으되 읽다보면 삶을 위한 투쟁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영은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극심한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작가는 판에 박은 듯, 전쟁 중의 시장을 가난이나 진흙탕 싸움 등의 이미지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시장 소음대신 음악이, 한숨과 절규대신 웃음소리로 화해와 희망을 심어놓았다.

읽으면서 아버지의 유랑적인 기질과 바람기, 기존의 관습과 가치관에 고통당하는 어머니의 모습, 남편을 잃고 홀로 딸과 살아가는 여성의 지난한 삶 등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삶의 고통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발견하는 것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품을 “어렵다”, “딱딱하다”라고 말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요즘의 소소한 이야기 구조와 자잘한 재미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이런 대서사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독자들에게, 작품 ‘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권한다. 그래야 우리 한국문학도 더 활짝 꽃필 수 있다.

그리고, 10월 하동 평사리에서 열리는 토지문학제에 가 박경리 문학의 숨결도 한번 느껴보시길.

하아무(소설가)

ps-어제 정희성(시인,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구중서(문학평론가) 두 분 선생님과 오인태, 박구경 선배 등과 함께 낮술 마시다 박경리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다. 그리고 함께 선생을 생각하며 묵념을 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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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지음 | 나남 펴냄
백치같이 보이는 여자 이가화. 컴니스트로서 인민과 사상에 충실하면서 이가화와 사랑을 나누는 기훈, 가 장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평화와 안락을 추구하는 동생 기석 등 많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방에서 6.25로 이어지는 무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시장과 전장(교과서 한국문학 박경리 2) 상세보기
박경리 지음 | 휴이넘 펴냄
『교과서 한국문학』시리즈 박경리편 제2권《시장과 전장》. 본 시리즈는 박경리의 작품을 통해, 논술을 학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어린이는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만화를 통해 작품의 줄거리와 주제를 살피고, 작품을 읽은 후에는 논술 문제를 통해 실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2권 <시장과 전장>은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고 고통당하는 지영과,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훈을 통해 6ㆍ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