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는 건 무질서보다 전도된 질서!”

<소설․알렉산드리아>-이병주, 범우사

 

1960년 4.19혁명 뒤 교원노조가 결성됐다.
이듬해 5.16으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빨갱이’로 매도하여 교원노조 간부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이병주 선생도 잡혀 들어갔다.
선생이 교원노조 고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국이 부재(不在)한 조국'
그런데 당시 검찰부는 교원노조에 대한 내용으로 취조하지 않았다.
고문이라는 직함이 활동보다는 상징적 의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선생이 주필로 있던 신문에 쓴 ‘조국이 부재(不在)한 조국’, ‘어떻게 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두 편의 논설이었다.

조국이 없다는 말에는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조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고,
어떻게 해서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식 통일을 수용한다는 말이 아니라고 설명해봐야 검찰에 통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은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을 복역한 뒤에야 풀려났다.

정치권력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출소 직후 자신의 수감 생활을 바탕으로 구상한 소설이 바로 <소설․알렉산드리아>다.
마흔네 살 늦은 나이에 쓴 공식 등단작이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형이 선생 자신이다.

소설의 주무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다.
신문에 쓴 논설 때문에 10년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형의 이야기와,
게슈타포 앞잡이에게 동생을 잃고 복수에 성공하는 한스 셀러,
그리고 스페인 게르니카에서 히틀러에게 부모형제를 잃은 사라 안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교차한다.

주인공이 판결을 보류하고 한스 셀러를 풀어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 속에 선생의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과 자신의 강렬한 사상이 있다.

전도된 질서 속 험난한 인생역정
사실 선생은 좌익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평생을 빨치산, 좌익 혐의를 받았고 숱한 오해와 불이익을 당했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 교육을 받고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을 당하고,
해방 공간의 좌우 이데올로기, 한국전쟁, 부역, 남북 분단, 5.16군사 쿠데타, 필화 사건 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 이병주.

선생 자신의 삶은 그대로 우리 한국 현대사와 포개진다.
소설 속에서 “겁나는 것은 무질서보다도 전도된 질서”라고 적시한 바대로,
전도된 질서 속에서 험난한 인생 역정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선생이 타계한지 10여년이 넘도록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잊혀져왔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학제가 제 모습을 갖춰가고, 심포지엄이 열리고,
생가가 복원되고 올해 초에는 기념관이 문을 여는 등 여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야기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작가
무엇보다 서점가에서 자취를 감춘 선생의 작품이 전집 형태로 지난해 다시 발간된 것이 뜻깊다.
떠들썩하게 행사를 하고 관광지로 만드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아마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내가 다른 거 바라고 소설 썼나? 읽으라고 썼지.”

선생은 ‘역사의 그물로 파악하지 못한 민족의 슬픔의 의미를 모색하고 소설로 충실하게 되살려낸 작가(장석주, 시인)’다.
또 ‘강렬한 사상성을 가지고, 풍부한 체험과 재능을 가졌으며, 우리나라 문장 전통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작가(이형기, 문학평론가)’다.
지금 우리가 작가 이병주의 작품을 다시 읽게 하는 이유들이다.

2MB 정권의 질서는 무질서보다 무섭다
특히 “겁나는 것은 무질서보다도 전도된 질서”라고 한 대목은 지금 우리들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물대포를 앞세운 경찰력과 무소불위의 힘을 내세운 2MB 정권의 질서.
그들의 말대로 무질서를 바로잡았을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질서/무질서'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전도된 질서', '전도된 가치'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종부세 완화, 혹은 폐지를 향한 일사불란한 행진.
강만수, 어청수 등 문제가 된 인사를 끝까지 싸고 도는 저 초지일관한 귀머거리 놀음.
세상 누구의 어떤 의견이든 듣고자 했던 조선시대의 상소나 신문고를 되살리지는 못할 지언정 댓글마저 한 줄 마음대로 달지 못하도록 하려는 저 애처러운 몸짓, 혹은 발악.
기타등등.

바야흐로 정말 무서운 시대다.

소설 알렉산드리아 상세보기

이병주 지음 | 한길사 펴냄

탈전통적이고 실험적인 소설담론을 취하고 있는 이병주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 서간체소설, 사상소설, 관념소설, 법정소설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 있다. 인간, 역사, 전쟁, 이데올로기, 정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