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로또 대박을 꿈꾸는 이들에게-화수분

개구리가 가져다준 화수분 바가지

늘봄 전영택(田榮澤)의 ‘화수분’은 짠한 느낌을 주는 단편소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가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가난한 부부의 고단한 삶과 비극적 죽음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려내었다.

화수분이란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보물단지다.
가령 돈을 넣어 두었다가 꺼내면 또 돈이 있고, 다시 꺼내도 돈이 가득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화수분은 부농의 아들이었다가, 급기야 큰딸 귀동이를 양녀로 보내야 할 만큼 궁핍하게 살게 된다.

현실적 의미에서만 보면 소설 속의 화수분은 반어법적 이름인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소설 ‘화수분’과 닮아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곤 하지만,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은 때가 허다하지 않은가.

진짜 화수분을 하나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살이가 힘들수록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술항아리, 요술램프, 흥부의 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 중 화수분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열심히 일해도 궁색해져만 가고
옛날에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이 있었다.
본래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천성이 착하고 부지런해서 잘 살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내라는 세금은 왜 그리 많고 받아가는 소작료는 또 왜 그리 비싼지, 도무지 살림이 펴지질 않았다.
게다가 홍수와 가뭄이 사이좋게 교대로 드는데도 내야 할 것은 내야 하니, 오히려 갈수록 궁색해져만 갔다.

“여보, 오늘 쌀독이 비어서 먹을 게 없어요. 어떻게 좀 해보세요.”
전 같으면 흉년이 들어도 어렵게 연명은 하였는데, 올해 여름에는 배를 곯는 일이 잦을 정도였다.
유독 부치고 있던 농부의 논밭만이 흔적도 없이 홍수에 쓸려 내려가버린 것이었다.
농부는 할 수 없이 집에 있는 세간을 하나씩 팔아 산 입에 쳐진 거미줄을 한 번씩 걷어내곤 하였다.

겨우 보리 한 됫박 받아서 터벅터벅
“이젠 더 이상 양식을 꿀 데도 없고, 팔 세간도 없으니 어찌한담.”
살펴보니 남은 것이라고는 솥단지와 숟가락 젓가락뿐이었다.
그때 마침 이웃 마을에서 피사리 할 놉을 얻는다는 소식을 듣고 행여 자리를 놓칠까봐 달려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겨우 보리 한 됫박을 받아 가지고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어떤 사람이 큰 함지박을 들고 가는데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보아하니 개구리를 잔뜩 잡아서 가지고 가는 것 같았다.
“무엇하러 개구리를 그리도 많이 잡아 가시오?”
물었더니 검게 탄 데다가 빼빼마른 그 사람이,
“먹을 게 없어 개구리라도 구워 먹으려고 그럽니다.”
대꾸했다.

개구리는 더 시끄럽게 울어대고
이 사람도 홍수 때문에 피해를 본 모양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딱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살기가 어려웠으면 개구리까지 잡아다 먹을 생각을 다 했을까.
자기 처지도 잊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개구리가 함지박 속이 떠나갈 정도로 더욱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래도 한창 팔딱팔딱 뛰어다닐 때인데, 그 녀석들도 참 안됐구려.”
“뭐, 이 개구리들 말이오?”

“예, 저것들도 한 세상 살아보려고 나왔는데 졸지에 먹히게 되었으니 억울하지 않겠소?”
“허헛 참, 팔자 편한 소리 다 하시는구려. 당장 우리 식구부터 살아야 할 판국이니 나도 어찌할 수 없소.”
별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잰걸음으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개구리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듣고 있던 농부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사람을 불러 세웠다.

"그 개구리 나한테 파시오"
“이보시오, 그 개구리를 나한테 팔지 않겠소?”
개구리 잡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내가 실없이 헛말 할 사람으로 보이오? 이 쌀 한 됫박을 줄 터이니 그 개구리를 내게 주시오.”
얼굴이 펴진 그 사람은 그래도 미심쩍은 듯이,
“댁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은데, 정말 바꾸시겠소?”
“허허, 평생 속고만 살았나. 걱정말고 이리 주시오.”

이렇게 해서 쌀 한 됫박과 개구리를 바꾸게 되었다.
농부는 근처 연못에 가서 개구리를 한 마리씩 풀어주었다.
개구리들은 놓여나자마자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신나게 헤엄쳐서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개구리를 연못에 다 풀어주고 ‘휘유’ 한숨 한 번 쉬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집에 들어가 무어라고 해야 하나.’

개구리떼가 건네준 바가지 하나
그때 물 속에 들어갔던 개구리들이 ‘개골개골’하면서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허허, 이 녀석들. 꼭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네. 어서 물 속으로 들어가거라. 또 잡힐라.”
그래도 개구리들은 가지 않고 개골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고 보니 뒤따라 나오는 개구리떼가 바가지 하나를 끌고 나왔다.
‘아하, 저 미물들도 은혜를 갚겠다고 저러는 모양이구나.’

바가지는 귀퉁이가 조금 부서져 나갔고 기운 흔적이 있는 낡은 것이었다.
농부는 누군가 버린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래, 헌 바가지이긴 하다마는 너희들 마음이 그러하니 받아두마.”
이렇게 농사꾼은 헌 바가지 하나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헌 바가지 뿐이니 체면도 안 서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눈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반색을 하며 달려나왔다.
“아이구, 애썼수. 그래, 그 댁에서 삯으로 무얼 받아왔소?”
“흠흠, 아무 것도 받지 못하였소.”
그러자 순간 아내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아무것도요?”
“아니, 받기는 했소만 오다가 일이 생겨서 말이야.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소.”

그러면서 들고 있던 바가지를 슬그머니 뒤로 숨겼다.
그러자 아내가 그 모양을 보고,
“들고 있는 건 바가지 아니에요? 거기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뭐, 바가지이긴 한데 아무 것도 없고 이것도 너무 낡아서 쓰기는 어렵겠더군.”
“아이, 뭔가 있는 것 같다니까 그러네. 이리 줘봐요.”
다가서는 아내를 보며 농부는 손사래를 쳤다.
“아무 것도 없대도 그러네.”

 "아니, 이렇게 좋은 쌀을?"
결국 아내가 바가지를 나꿔챘다.
“어머나, 그 댁에서 이렇게 좋은 쌀을 주더란 말이우?”
“뭐, 쌀이라니?”
농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분명 바가지는 개구리가 준 헌 바가지인데, 그 안에 눈부시게 흰 쌀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당신 농담도 잘 하는구려, 빈 바가지라더니. 그런데 이렇게 좋은 쌀은 생전 처음 봐요.”
“농담이 아니야. 이게 웬일이야, 도깨비 장난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바가지에 어느새 하얀 입쌀이 가득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농부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에 아내는 그 쌀을 들고 부엌에 들어갔다.
농부의 가족은 오랜만에 배불리 밥을 먹었다.

"바가지에 또 쌀, 쌀이..."
다음날 아침,
“에그머니나, 이게 뭐야!”
농부의 아내가 부엌에 나갔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제 비워놓은 바가지에 또 쌀이 가득히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보 여보 여보, 이것 좀 보시우. 바가지에 또 쌀, 쌀이…….”

농부도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 바가지가 바로 말로만 듣던 화수분 바가지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되나 싶어 쌀을 퍼내면 가득 차고, 또 퍼내면 가득 차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하루에 세 번까지만 나오고 그 이상은 아무리 해도 더 나오지 않았다.
‘개구리들이 목숨을 살려준 은공을 갚으려고 내게 이런 보물을 줬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농부가 개구리를 풀어준 연못으로 가보았지만 어쩐 일인지 개구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농부는 떡과 과일을 연못가에 차려놓고 제를 지냈다.
“개구리들아, 정말 고맙구나. 아마도 하늘이 내려준 복일 테니 이를 어찌 나 혼자 쓰겠느냐. 있다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없는 사람과 함께 나눠 쓰도록 하마.”
농부는 바가지에서 나온 쌀을 아껴 하루 한두 바가지는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웃사람들뿐만 아니라 소문이 퍼져 양식이 떨어진 사람들은 먼 데서까지 찾아왔다.
쌀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자 바가지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농부는 그 전보다 더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화수분 바가지의 쌀뿐만 아니라 자기가 수확한 양식까지 아낌없이 나눠주니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어? 화수분 바가지가 어디로 갔남?"
이렇게 나눠주는데도 농부의 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갔다.
갚으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양식을 수확하면 갚는 사람이 많았고, 양식이나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라도 갚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일 이후에는 홍수나 가뭄이 거의 없어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화수분 바가지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누구는 산산조각 나버렸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개구리들이 다시 가져갔다고도 했지만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재수가 좋고 운이 따라주어 갑자기 복을 받았다 해도
평소에 덕을 쌓고 착하게 살지 않으면 그 운은 계속 남아 있지 않는다.
로또의 행운을 꿈꾸는 사람들이여, 평소 "차카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