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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뺨치는 우리 옛이야기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부자 되기 어렵다

주위에 있어서는 곤란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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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면 웃어른이나 친구를 찾아가 새해인사를 나누는데, 이를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생자(生子)․득관(得官)․치부(致富) 등에 관한 말로 축원하되
그 해에는 그런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한다.
이는 길흉의 징조에 따라서 만사만물이 그대로 된다는 영적(靈的)인 힘의 작용을 믿은 데서 비롯되었다.

“올해에는 아들 낳겠구먼.”
“자네 이번에 승진하겠는데?”
“자네 벌써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면서?”
이런 투로 말하는데, 그렇게 덕담을 하면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성공을 축원하는 마음을 전하는데, 절로 힘이 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상사든, 동료든, 부하직원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직접 힘을 실어주지 못하더라도 말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옆에서 말끝마다 짜증내고 다른 사람 험담하는 이가 있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더구나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이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있어서는 곤란한 일이다.

오늘의 주인공, 등장!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남 도와주기 좋아하는 농사꾼이 살았다.
노인네들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웃이고, 아낙네고, 어린아이까지도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자기 논밭 일을 못해도 남 먼저 나서서 도우니 칭찬이 자자하였다.

이 마을에는 큰 강이 하나 있었는데 해마다 무슨 행사처럼 물난리를 겪곤 했다.
그런데도 고을 원이 제방을 쌓거나 사방공사 하는데 쓰일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바람에 동민들만 곤란을 겪었다.

큰 홍수에 다 떠내려가고...
어느 해 여름, 다른 해보다 더 많은 비가 와서 큰 홍수가 났다.
갑자기 밀어닥친 빗물에 논밭이 잠기고,
집이 떠내려가고,
온갖 가축들이 떠내려가고,
심지어 사람까지도 속절없이 떠내려가기도 했다.

“아이구 저런, 딱하게도…….”
하루는 농부가 강가에 나가 보니,
새끼사슴 한 마리가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오고 있었다.
아마 큰비에 허둥대다가 어미를 잃고 갑자기 불어난 흙탕물에 휩쓸렸거나
무너지는 토사에 발이 빠졌을 터였다.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
“아버지, 가엾어요. 구해줄 수만 있다면…….”
옆에서 보고 있던 딸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게 말이다. 저 사슴도 살려고 태어났을 텐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쯧쯧.”
딸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져내릴 것 같았다.
“그래, 저렇게 허망하게 죽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이렇게 생각하고 농부는 긴 장대를 던져주었지만 사슴이 그것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새끼줄로 동그란 매듭을 만들어 던져주었는데,
다행히 사슴의 목에 걸려 구해줄 수 있었다.
농부는 사슴을 집에 데려다가 죽을 쑤어 먹여 힘을 차리게 하고
이불을 덮어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슴도 구했는데 뱀까지...
“허허, 정말 다행이다.”
딸은 깡총거리며 기뻐했다.
그 다음 날, 농부는 다시 강가로 나가보았다.
여전히 소, 돼지며 닭 등 가축이 자주 떠내려왔지만
물살이 너무 세고 거리가 멀어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니, 저건 뱀 아닌가?”
커다란 뱀 한 마리가 흙탕물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렇군. 이렇게 큰비에는 저런 간교한 동물도 어쩔 수 없는가 보이.”
농부는 사슴을 구할 때 썼던 긴 장대를 준비했다.
“아니, 자네 그것으로 무엇하려고 그러나? 설마…….”
“구해주어야지. 아무리 사람에게 해가 된다 해도 다 하늘이 주신 생명 아닌가.”

"살려주시오, 제발..."
이렇게 건져준 뱀을 집에 데려다 짚더미 속에 놓아 두고 쉴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다음 날 또 강가에 나가보았다.
“살려주시오, 제발.”
이번에는 어떤 젊은이가 물에 빠져 떠내려오면서 소리를 쳤다.
사슴도 살려주고 뱀까지 건져주었는데, 사람을 도와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웃 사람들과 힘을 합해 겨우겨우 살려냈다.
농부는 젊은이를 얼른 집에 데리고 와서 옷을 갈아 입히고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보살펴주었다.

며칠 후, 비가 그치자 사슴과 뱀은 기운을 되찾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산속으로 가버렸는데, 젊은이는 떠나지 않았다.
“저는 돌아갈 집도 없어지고 함께 살 식구도 없습니다.”
“허어, 딱하게 되었네 그래. 어떡한다?”
그러자 젊은이가 농부의 옷을 부여잡았다.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여기서 살게 해주십시오. 제발…….”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살려준 사슴이 찾아와서...
“알았네, 알았어. 그리 하게나.”
결국 젊은이를 한 식구처럼 여기고 함께 살았다.
이렇게 그 젊은이와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지내는데,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사슴이 농부를 찾아왔다.
“아니, 너는 홍수 났을 때 강에서 건져준 사슴이 아니냐? 참 반갑구나.”
사슴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농부에게 다가왔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다시 찾아왔느냐?”
물었더니 사슴이 농부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끌면서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저 놈의 사슴이 왜 저래? 몽둥이로 콱…….”
옆에서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젊은이가 달려들었다.
농부는 젊은이를 말리고 사슴이 끄는 대로 따라갔다.
사슴은 산으로 자꾸만 들어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 땅을 파는 시늉을 했다.
농부가 그곳을 조금 팠더니 큰 금덩이가 있었다.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제방도 쌓고...
“아니, 이건 웬 금덩이냐?”
사슴은 농부에게 더 파보라는 듯 앞발로 땅을 굴렀다.
조금 더 팠더니 더 많은 금덩이가 나오는데, 혼자 들고 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금덩이가……?”
농부가 사슴에게 말을 걸어보려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사슴이 온데간데 없었다.

농부는 금덩이를 내다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
그 돈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그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그냥 자기 혼자 부자가 된 것으로 만 것이 아니라,
부실한 제방을 다시 튼튼하게 쌓아 더 이상 마을 주민들이 홍수로 고생을 하지 않도록 했다.

주인을 속여 타낸 돈으로 술 먹고 노름하고...
“부자가 되어도 남 돕는 일은 여전하다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사람들의 입에서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로 살게 되니까 같이 살던 젊은이가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
일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달라고 해서 마구 쓰고 다녔다.
그냥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하는데 쓸 돈이라고
농부를 속여 타낸 돈으로 술 먹고 노름을 했다.

결국 쫓겨난 젊은이는...
보다 못한 농사꾼이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이보게, 이렇게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는 얼마 안 가서 살림이 남아나지 않겠네. 돈이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네. 이제부터는 꼭 쓸 데가 아니면 돈을 안 줄 터이니 그리 알게나.”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돈을 주지 않으니까 여기저기 외상을 하고 빚을 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농부 몰래 돈을 훔치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과 가축을 제멋대로 팔아서 또 마구 펑펑 썼다.

하도 어이가 없고 고칠 수 있는 버릇이 아니다 싶어 농부는 젊은이를 쫓아냈다.
“내가 물에 빠진 자네를 건져준 것은 자네를 살리려는 것이었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안되겠으니 이 집을 나가게.”
농부는 젊은이가 어디로 가든 살아갈 수 있도록 새 옷과 필요한 돈을 주어 내보냈다.

젊은이와 욕심 많은 권력자는...
하지만 젊은이는 그 돈을 전부 술과 노름으로 다 써버리고 다시 찾아왔다.
농부는 더 이상 젊은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자네를 건져주고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내가 잘못 생각했어.”
농부가 대문조차 열어주지 않자, 젊은이는 그만 앙심을 품고 거짓으로 관가에 고발을 했다.
농부가 도둑질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고을 원에게 고해 바쳤던 것이었다.
농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관가에 잡혀가 옥에 갇혔다.

“그건 사실이 아니올시다. 도대체 도둑을 맞았다거나 금덩이를 잃어버렸다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어디 가서 그런 것들을 훔쳤다는 말이오.”
아무리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욕심 많은 고을 원이 농부의 재산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려준 뱀이 와서 주인을 물고...
“아이고,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옥에 갇혀서 가만히 생각하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물에 빠진 짐승과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짐승은 보은을 하고 사람은 배반을 하는구나 싶어서 한숨만 나왔다.

옥에 갇혀 며칠이 지나자, 하루는 옥문으로 뱀 한 마리가 스르르 기어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까 전에 농부가 구해준 뱀이었다.
‘옳지, 이 뱀이 내가 곤경에 처한 것을 알고 구해주려고 왔나 보다.’
하고 반가워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뱀이 스르르 기어와서 농부의 발목을 꽉 물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스르르 옥문 밖으로 기어나가 버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아이고, 나 죽네.”
뱀에게 물리고 조금 지나자 물린 발목이 퉁퉁 부어 허벅지만 해졌다.
나중에는 독이 온몸에 퍼져서 살이 시커멓게 죽어갔고,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지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옥문을 지키고 있던 옥사쟁이가 그 모습을 보고는,
“아이고, 큰일났구먼. 내 다른 사람을 불러올 테니 조금만 참고 있으시오.”
그리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몹쓸 놈의 뱀 같으니라고. 사슴처럼 나를 도우러 온 줄 알았더니 되레 나를 죽이는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사람뿐인 줄 알았더니 짐승까지도 그럴 줄이야.’
이렇게 한탄을 하면서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뱀이 다시 스르르 기어 들어왔다.
그런데 입에 어린애 손바닥만한 무슨 풀잎사귀를 물고 와 아까 제가 문 자리에다 갖다 대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물린 상처가 아물고 부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라앉았다.
농부도 처음 보는 그 풀잎사귀가 뱀독을 풀어내는 약초였던 모양이었다.

"뱀에게 물렸는데 살아났다오"
‘허어,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니었구나. 그런데 아까 물기는 왜 물었단 말인가. 필시 무슨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조금 후에 옥사쟁이가 이방과 동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아니, 멀쩡하지 않은가.”
“이런 고얀, 정말 뱀한테 물려서 죽어가고 있었단 말이냐?”

옥사쟁이가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농부는,
“허허, 거짓말이라니요. 정말 뱀에 물렸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뱀에게 물렸을 때 쓰는 저만의 비법이 있습니다.”
대답하였다.
이방이 집요하게 그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집안에서 비밀리에 대대로 전해내려 것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버티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헌이 시끄러워졌다.

결국 짐승은 은혜 갚고, 사람은 배신하고...
“원님이 뱀에게 물렸다아! 급히 의원을 불러라, 급하다 급해!”
그제야 농부는 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옳거니, 그 뱀이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까닭을 이제야 알겠구나. 허허, 허허허.’
농사꾼이 얼른 옥사쟁이를 불러서, 자기를 고을 원에게 데려다 주면 당장 고쳐보겠다고 했다.
옥사쟁이가 직접 자기 눈으로 보았고 이방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곧바로 농부는 고을 원에게로 인도되었다.

원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농부는 당장 뱀이 남기고 간 풀잎사귀를 상처에 붙어서 원의 목숨을 살려놓았다.
이렇게 원의 신뢰를 얻은 농부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다 이야기했다.
원은 자신이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을 뉘우치고,
즉시 농부를 옥에서 풀어주는 대신 누명 씌운 젊은이를 도로 옥에 가두어버렸다.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득이 되는 사람인가, 독이 되는 사람인가?
하지만 그 전에 더 중요한 한가지,
내가 충분히 포용력 있고 덕망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좋은 사람이 넘칠 것이리니.